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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토속 음식, 묵물죽과 오이뱃두리 본문

음식&요리/Food & Cooking

서울 토속 음식, 묵물죽과 오이뱃두리

dhgfykl; 2010. 5. 29. 00:42

서울 토속 음식, 묵물죽과 오이뱃두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집요한 그리움 속에는 늘 고향의 맛이 있다. 한반도가 아무리 작다지만 각 지방의 토속 음식을 들여다보면 그 세계가 얼마나 깊고 다양한지 새삼 놀라게 된다. 이름마저 낯선 묵물죽과 오이뱃두리는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 초여름에 서울에서 즐겨 먹던, 서울 토박이만 아는 서울의 맛이다.
혹시 ‘묵물죽’이라는 음식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청포묵을 쑤려고 녹두를 곱게 갈아 가만히 두면 아래로는 녹두 녹말이 가라앉고 위로는 말간 물이 뜨는데, 그 말간 묵물로 죽을 쑤었다 해서 묵물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울토박이인 내 기억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하지만 이제는 사라져가는 음식을 꼽으려니 가장 먼저 이 묵물죽이 떠오른다. 요즘에야 제대로 만든 진짜 청포묵을 만나기도 어려워졌으니, 묵물죽이 없어질 수밖에.
하늘이 흐릿하거나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묵물죽 쒀 먹게 저 묵집에 가서 묵물 좀 사오너라” 하셨고, 나는 커다란 통을 들고 심부름을 가곤 했다. 옛날에는 동네에 청포묵만 쒀서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녹두 녹말 가라앉히고 생기는 말간 묵물만도 따로 팔았다. 워낙 양이 많으니 돈을 조금만 줘도 커다란 양재기에 넉넉히 퍼 담아줬다. 동네 어른인 할머니가 가시면 가끔은 그냥 얻어오기도 하셨다.

할머니가 큰맘 먹고 집에서 직접 녹두를 불려 맷돌을 돌리는 날에는 묵물죽도 큰 솥으로 한가득 끓여 온 식구가 며칠을 두고 먹었다. 녹두 녹말을 가라앉혔어도 녹말기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이 묵물에 불린 쌀을 넣고 죽을 쑤면 얼마나 담백했는지, 요즘도 가끔 친척들이 모이면 옛날에 묵물죽 맛있게 먹던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녹두의 ‘배틀한 맛’(지금은 이런 표현을 잘 쓰지 않지만, ‘배틀하다’는 조금 비린 듯한 감칠맛이 있다는 뜻이다. 맛있는 녹두와 팥의 맛, 냄새를 표현하던 형용사)이 잘 느껴져 딱히 다른 반찬 필요 없이 묵물죽만 먹어도 참 맛있다. 믹서도 없던 시절, 녹두를 불리고 껍질을 벗기고 맷돌에 갈아 가라앉혀야 했으니 일부러 만들기는 무척이나 번거로웠지만, 한편으로는 묵집에 가서 묵물을 사다 금세 만들 수도 있었으니 그 당시로서는 몇 안 되는 반조리 식품이요, 패스트푸드가 아니었을까.

또한 어려서부터 친정에서 어른 생신이나 결혼식 같은 잔치 때 빠뜨리지 않고 꼭 만들던 특별한 반찬으로 ‘오이뱃두리’가 있었다. 오이뱃두리는 할머니가 만드시던 것을 어머니가 배워 따라 만드시고, 이제는 친정 동기들 중에서도 나만 손맛을 이어가는 음식이다. 요즘처럼 한창 오이 맛이 드는 초여름부터 즐겨 먹었다.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오이뱃두리를 많이 알고 있겠지만 우리 집 오이뱃두리는 만드는 과정이 조금 다르다. 굵직하게 썬 오이를 소금에 절여 물기를 꼭 짠 뒤 기름에 볶아 쇠고기와 함께 무쳐낸 반찬으로, 따뜻한 밥에 곁들이면 참 맛있다. 매콤달콤한 맛과 싱그러운 오이의 향은 기본이고, 오돌오돌 아작아작 상쾌하게 씹히는 소리가 옆 사람마저 절로 군침 돌게 만든다.
오이 다섯 개로 만들어도 고작 두 접시 정도 나오는 오이뱃두리는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드는 정성스러운 음식이기도 하다. 오이뱃두리 성공의 비결은 오이의 수분과 아작아작한 질감을 얼마나 적절히 조절하느냐에 달려 있다. 오이의 수분이 적당히 빠져 부러지지 않을 정도의 탄력을 갖고 있어야 하며 하얀 속살이 껍질과 적당하게 달라붙어야 하는데, 이렇게 만들려면 절인 오이를 반드시 무거운 돌로 정성껏 눌러놓아 천천히 물기를 빼야 한다. 요즘 많이 쓰는 음식물 탈수기를 이용하면 간편하고 빠르게 오이의 수분을 제거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물기만 쪽 빼낼 뿐이다. 그렇게 완성한 말랑말랑 아작아작한 오이뱃두리는 식구들을 위한 특별한 반찬으로 그만이다. 무쳐놓아도 물이 생기지 않으니 도시락 반찬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초여름 시들해진 입맛을 개운한 오이뱃두리로 찾아보시길.

서울 토박이 최기정 씨는 잊혀져가는 서울 음식으로 묵물죽과 오이뱃두리를 소개했다. 어렸을 적 맛의 기억을 잊지 못해 친정 식구들 중에서도 자신만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가끔 옛 생각에 오이뱃두리와 묵물죽을 만들면 그가 운영하는 논현동 한식당 ‘다정’의 손님 상에 올려 맛을 나눈다.


묵물죽과 오이뱃두리 만들기

묵물죽

재료 생녹두 1컵, 불린 쌀 1 1/2 컵, 물 12~13컵, 소금 1큰술
만들기
1
생녹두는 물에 담가 충분히 불린 뒤 껍질을 벗겨 깨끗이 씻는다.
2 믹서에 껍질 벗긴 녹두를 넣고 물 3컵을 넣어 곱게 간다.
3 ②를 고운체에 거른다. 체에 남은 녹두는 다시 믹서에 갈아 체에 거른다. 3시간 이상 가만히 두어 녹두를 가라앉힌다.
4 가라앉은 녹두의 윗물을 냄비에 가만히 따라낸다.
5 ④에 불린 쌀을 넣어 주걱으로 계속 저으며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물을 8~9컵 정도 넣고, 다시 끓기 시작하면 ③의 가라앉은 녹두 윗부분의 걸쭉한 녹두를 넣어 끓이면서 농도를 맞춘다.
6 쌀알이 퍼지면 물 1컵으로 농도를 조절하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 가라앉힌 녹두 아랫부분의 하얀 녹말로 묵을 쑨다. 이를 ‘제물묵’이라고 한다(녹말 1: 물 5).


오이뱃두리
재료 조선오이 5개(약 800g 정도), 소금 4큰술, 쇠고기 50g, 식용유 약간
고기 양념 간장 1/2 큰술, 설탕・다진 파 1작은술씩, 다진 마늘・참기름・깨소금 1/2 작은술씩, 후춧가루 약간 무침 양념 설탕・고춧가루 1큰술씩, 참기름 1작은술, 깨소금 2작은술, 실고추 약간
만들기
1 씨 없는 연한 오이를 준비해 소금으로 문질러 씻는다.
2 4cm 길이로 토막 낸 뒤 방사형으로 8등분해 약 3시간 정도 소금에 절인다.
3 잘 절인 오이를 망이나 자루에 담은 뒤 무거운 돌로 눌러놓아 물기를 적당히 뺀다. 돌을 돌려가며 골고루 눌러 3~4시간 정도 물기를 뺀다.
4 쇠고기는 가늘게 채 썰어 고기 양념으로 버무려 재운다.
5 오이의 물기가 적당히 빠지면 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살짝 볶은 뒤 쟁반에 펼쳐 담아 식힌다. ④의 양념한 고기도 팬에 볶는다.
6 볼에 볶은 오이와 고기를 넣고 무침 양념을 넣어 무친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