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Martin Ggrant (오른쪽) Gaspard Yurkievich
블랙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그 어떤 색도 아니지만 모든 색의 궁극이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어두운 색이 가장 복잡다단한 매력을 내포하는 모순이라니. 수녀복에서 발견되는 극도로 절제된 색이며 요부의 란제리에 사용되는 퇴폐적인 색이기도 하다. 성직자가, 왕과 귀족이, 하녀와 창부가 모두 사랑하는 색이 블랙 말고 또 있던가? 이런 블랙을 캔버스로 무릎을 살짝 덮는 길이와 긴소매의, 별다른 장식 없는 옷 한 벌이 등장했다. 그러곤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라 불렸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자들이 입어왔던 옷이겠지만 코코 샤넬이 1926년 쇼를 통해 오늘날 리틀 블랙 드레스의 원형을 선보인 이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쉼 없이 재해석되고 재창조되었다. 위베르 지방시는 오드리 헵번에게 사랑스럽지만 위엄을 잃지 않은 리틀 블랙 드레스를 입혔고, 발렌시아가는 옛 스페인 왕족의 당당함과 비장미를 자신의 우아한 디자인으로 되살렸으며, 가와쿠보 레이와 야마모토 요지는 해체주의적 재단으로 젠 스타일의 블랙 드레스를 창조해냈다. 그래서 20세기 패션에서 가장 의미 있는 옷 한 벌을 고르라면,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리틀 블랙 드레스를 꼽는다. 언제 어디서나 입어도 가장 고상하고 가장 시크한 옷,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능력을 발휘하는 단 한 벌.
 (왼쪽부터) Giorgio Armani Prive Donna Karan New York Fendi
2010년 크리스털라이즈드 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에서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에게 이 영원한 아이콘을 재해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자사에서 만드는 크리스털을 함께 활용해서 말이다. 이 주문에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최고의 브랜드가 속속 응답했다. 바쁘기 그지없는 이들의 일정을 고려해 길고 긴 조정을 거쳐 마침내 최종적인 명단이 정해졌다. 프랑스에서는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랑방의 알버 알바즈・아자로・소니아 리키엘・장 폴 고티에가, 이탈리아에서는 발렌티노・조르지오 아르마니・미쏘니・펜디・알베르타 페레티・지안프랑코 페레가, 미국에서는 도나 카란・다이안 폰 퍼스텐버그・필립 림・타쿤이, 영국에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부디카 등이 참여했다. 이쯤이면 그야말로 패션계의 올스타팀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왼쪽) Gianfranco Ferre (오른쪽) Diane von Furstenberg
22명의 톱 디자이너가 만든 22벌의 드레스. 크리스털라이즈드 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의 후원 아래 최고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유럽과 미국 대륙을 넘나들며 만들어낸 결과물은 럭셔리 그 자체였다. 모두 최고의 소재를 사용한 ‘핸드메이드’인데다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다. 패션뿐 아니라 건축과 가구, 샹들리에 등 다양하게 활용되는 크리스털 소재를 각각의 디자이너가 어떻게 해석했는가라는 재미가 더해져 전시 개막 전부터 패션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리틀 블랙 드레스들이 처음으로 공개된 장소는 우아한 고전미를 자랑하는 건물이자 예전 칼 라거펠트의 아파트였던 오텔 포조 디 보르고Hotel Pozzo di Borgo였으니 최고급 오트 쿠튀르 드레스를 감상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는 듯했다. 요즘 가장 각광받는 젊은 디자이너 필립 림의 드레스에 영감을 준 것은 피카소의 큐비즘이었다. ‘리틀 블랙 드레스’지만 그는 아이보리색 새틴으로 클래식한 기본 라인의 미니 드레스를 만든 다음 블랙 크리스털라이즈드 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를 과감하게 배치했다.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 새틴과 크리스털의 대비가 경쾌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왼쪽) Missoni (오른쪽) Jean Paul Gaultier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는 자신의 심벌이 된 랩 드레스를 선보였는데, 크리스털 디테일을 한껏 강조했다. 자신의 주얼리 컬렉션 주요 모티프인 격자무늬 오픈워크를 도입한 소매에는 500여 개의 크리스털 엘리먼츠를, 벨트에는 400여 개의 엘리먼츠를 사용했다. 영화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같은 1940년대 팜 파탈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바람이 이 한 벌을 통해 잘 표현된 듯. 도나 카란은 기다란 비스코스 저지 가운을 만들고 23명의 재봉사를 고용해 2600여 개의 크리스털 스톤을 바느질해 넣는 열성을 보여주었다. 칼 라거펠트가 지휘한 펜디의 디자인 팀은 나파 가죽의 A 라인 드레스 앞뒷면에 크리스털 리벳과 크리스털 펄을 장식해 시크함을 강조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리베는 ‘빛에 따라 움직이는 드레스를 만들고 싶다’는 아르마니의 바람을 반영해 스트랩리스 가운 전체에 크리스털을 달고 허리 부분에 커다란 꽃송이(역시 크리스털로 장식한)를 달아 여성미를 극대화했다.
 Azzaro
 (왼쪽) Valentino (오른쪽) Marios Schwab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가 만든 드레스는 그야말로 파격적. 리틀 블랙 드레스로 유명한 위베르 지방시의 고전적이고 우아한 디자인 대신 카우보이 재킷을 모티프로 기하학적 커팅을 강조한 후 크리스털을 장식해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클래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한 장 폴 고티에는 X자 모티프로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 그의 타프타 칵테일 드레스는 크리스털과 비즈로 장식한 대담한 X자 스트랩으로 목과 가슴 부위를 처리했는데 강렬하면서도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아 호감을 샀다. 최근 가장 주가를 올리고 있는 랑방의 디자이너 알버 알바즈의 드레스 앞에는 특히 젊은 여성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소매 없는 트라페즈 드레스의 매력은 바로 트롱프뢰유, 즉 눈속임. 아름다운 크리스털 목걸이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드레스 앞판에 달려 있는 장식이다. 바이어스 컷으로 재단한 10미터 길이의 새틴 밴드로 허리를 잘록하게 매면 더할 나위 없이 여성적인 실루엣이 만들어진다.
 Alberta Ferretti
드레스 전체에 농담을 달리해 가며 크리스털을 달아 화려하기 그지없는 마틴 그랜트의 드레스는 크리스털라이즈드 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의 매력을 최대한 강조한 작품. 어깨와 히프를 살짝 강조한 것 말고는 극히 단순한 디자인이 오히려 더 유혹적이다. 펑크의 대모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이탈리아 화가 만테냐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미세한 크리스털로 메시 효과를 낸 케이프와 페플럼(웃옷이나 블라우스에 붙여 허리만 살짝 두르는 짧은 스커트)으로 인상적인 룩을 제안했다. 독특한 니트 짜임으로 한 눈에 알 수 있는 미쏘니! 비대칭적 네크라인의 슬리브리스 드레스는 놀랍게도 크리스털 패브릭으로 만든 것. 여기에 커다란 제트 헤마타이트 스톤 3개로 포인트를 주었다. 사랑스럽고 여성적인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알베르타 페레티는 다른 어떤 보석 장신구 없이 입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한 실크 시폰 드레스를, 아자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바네사 시워드는 1500개의 크리스털 엘리먼츠를 활용한 뷔스티에풍의 미니 드레스를, 떠오르는 신예 디자이너 가스파르 유르키에비치는 크리스털 메시의 섬세함을 강조한 드레스와 여기에 어울리는 머리 장식을 함께 만들었다. 니트의 여왕 소니아 리키엘은 크리스털로 글자를 새긴 메리노 울 드레스와 면 재킷을, 발렌티노의 새로운 디자이너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와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는 극도로 단순한 드레스에 팔과 어깨 라인을 따라 거미줄처럼 정교한 와이어에 크리스털을 달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위) 3.1 Phillip Lim
 Lanvin
 Vivienne Westwood
 Sonia Rykiel
전시장 오픈에 참석한 관람객들은 온통 반짝거리는 크리스털과 리틀 블랙 드레스의 매력 속에서 잠시 동안 길을 잃고 환상 속을 걸어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장 럭셔리한 색인 블랙과 가장 럭셔리한 재료인 크리스털이 만나 찬란하게 반짝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이 전시를 통해 패션이란 전통인 동시에 혁신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Ways to Say Black’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그저 전시회에 머물지 않는다. 파리 전시 오픈을 시작으로, 3월 말에는 베이징으로 옮겨 전시하고 9월에는 뉴욕의 유명한 경매사인 필립 드 퓌리에서 22벌의 드레스를 경매에 붙인다. 전 세계 VIP 고객들에게는 당대 최고의 리틀 블랙 드레스를 직접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셈. 현장 경매는 물론 전화로도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각 드레스의 이미지 컷은 물론 특징, 소재, 사이즈 등을 소개한 도록 도 출간한다. 경매의 수익금은 미국 암학회와 프랑스 암예방협회에 전달할 예정. 전시와 경매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www.crystallized.com/black에서 확인할 수 있다.

 Crystallized Swarovski Elements 마커스 랑페 마케팅 담당 선임부사장 1987년 스와로브스키에서 일을 시작한 이래 크리스털 컴퍼넌트 사업부의 성공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온 마커스 랑페Markus Lampe 부사장은 전 세계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행사를 총괄하느라 바빴지만 크리스털만큼 반짝이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스물두 벌 중 특히 마음에 드는 작품은 혹시 없느냐는 질문에는 ‘“최고 중 최고 디자이너들의 작품인 만큼 하나를 편애하기란 불가능하다!”라고 정중하게 답했다. 전시를 기획하며 힘들었던 점은? 훌륭한 디자이너들 중 누구를 선택할지가 가장 힘들었다. 옥션이 예정되어 있기에 그전에 작품 디자인과 제작을 끝낼 수 있어야 했고, 경매를 통해 고객을 찾아야 하니 입고 싶고 입을 수 있는 드레스라는 ‘상업적’인 면도 고려해야 했다. 최고의 전문가들이어서 그런지, 결과물로 나온 22벌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이런 대규모 행사는 그 자체가 도전이지만 이미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어 어렵지는 않았다. ‘크리스털라이즈드 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를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보헤미안의 발명가이자 공상가였던 다니엘 스와로브스키는 크리스털 커팅과 폴리싱 솜씨가 뛰어났다. 1895년 설립 후 대를 이어가며 사업을 넓혀 최고의 커팅 크리스털 제조업체로 성공해 120개국에 2만6000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크리스털 소재라 하면 패션만을 생각하겠지만 가구, 조명, 건축재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방면에 사용되어 우아하고 감각적인 매력을 발휘한다. 함께하는 모든 업계를 자극하고 영감을 불어넣는 것이 우리 회사의 궁극적인 미션이다.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털라이즈드 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가 꾸준한 성장을 기록하는 비결은? 전통과 혁신을 항상 조화시킨다는 것! 어떤 분야건 경기에 상관없이 꾸준히 기술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시즌마다 새로운 해석, 새로운 커팅, 새로운 컬러의 크리스털을 선보인다. 이런 크리스털 엘리먼츠는 패브릭뿐 아니라 종이나 목재와도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리기에 항상 다양한 활용법을 제안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 변화에 맞춰 트렌드를 잘 살피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앞으로는 건축과 인테리어 분야, 특히 패널이나 벽지, 콘크리트 등과 결합해 놀라운 매력을 보여줄 예정이니 기대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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