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기다림과 여행하는 것이다♡
한옥을 찾아서] 한옥 짓은 13인의 장인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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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 최기영·신응수 씨와 소목 설석철 옹은 중요무형문화재로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인이다. 두 대목은 궁궐이나 사찰 같은 문화재 보수·복원과 큰 규모의 한옥 건축을 겸하며 전통 건축의 계보를 잇고 있다. 설석철 옹은 한옥을 채우는 가구를 전통 기법 그대로 계승해 만들고 있다. 대목 최웅희·박석규·김길성·조전환·송혜종·정영수·홍덕길·문석환 씨는 북촌뿐 아니라 전국을 오가며 전통 한옥을 지금 시대에 맞춰 짓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성환 화문장은 손 많이 가는 꽃담을, 박천동 창호장은 한옥에 설치될 창과 문을, 노행용 가구장은 한옥에 들어갈 살림살이를 만드는 장인이다. 다시 태어나도 목수가 되겠다고 말하는 그들의 인생과 연륜을 나무와 흙과 종이에 묻고 혼을 담아 지은 집이 바로 한옥인 게다. 그들과의 동행 취재가 마치 어깨너머로나마 한옥 한 채를 지은 듯 하다면 과장일까. 과연 누가, 어떻게, 우리의 드림 하우스, 한옥을 짓고 있을까. |
“살면 살수록 참 맛을 알게 된다” 대목 홍덕길 지금도 배우는 자세로 한옥 짓기에 임한다는 홍덕길 씨는 목수 일을 한 지 어느덧 40년째다. 매번 한옥을 지을 때마다 자신의 손길로 만들어낸 지붕이며 들보가 어느 가족의 삶의 터전이 된다는 생각에 늘 신중하게 된다. “설계 도면이 있어도 짓고 없어도 짓는 것이 한옥이죠. 옛날과 다르게 요즘은 설계 도면이 있어야 건축 허가가 나지만요. 도면도 잘 봐야 하고 여기저기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그저 열심히 만든다며 투박하게 대답하는 그이지만, 기둥이며 들보 사이 이음매를 매만지는 손놀림과 눈매가 누구보다도 예리하다. 특히 기둥과 문틀은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 기둥이 반듯하게 수직을 이루어야 집이 제대로 들어서고, 문틀 각도가 정확하게 맞아야 나중에 문짝과 부드럽게 들어맞는다. 이 문틀 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나무 창호는 알루미늄 창호와 달리 습도에 따라 팽창?축소하기에 조금만 실수해도, 계절 따라 사방에서 문이 닫히지 않는 불상사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한옥에서는 무엇보다 나무가 좋아야 한다. 그가 최고의 나무로 치는 것은 ‘소나무의 제왕’이라 불리는 춘양목. 천천히 자라 나이테가 조밀하고 송진을 많이 함유해 무르면서도 질기다. 이제는 귀해진 춘양목 대신 국산 육송을 쓰고 기둥, 들보처럼 굵은 부분은 외국 홍송을 쓴다. 새로 짓지 않고 보수하는 경우, 고재古材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 충분히 건조된 고재는 수축과 갈라짐이 적다. “하지만 손상이 생겨도 괜찮아요. 보수하며 살면 되는 것이 한옥이거든요. 차곡차곡 쌓은 기와도, 짜 맞춰 완성한 기둥도, 마루도, 얼마든지 보수 할 수 있어 집이 오래가죠.” 홍덕길 씨는 나무 만지고 집 짓는 일이 좋아 목수가 되었다. 서울 우이동 보광사를 비롯한 다수의 사찰과 고건축, 살림집 한옥을 두루두루 작업했다. 요즘에는 삼청동의 살림집 한옥 개?보수 작업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한옥 지으며 생긴 톱밥만 모아도 대궐 한 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홍덕길 씨의 분주한 공사 현장, 그곳에는 다른 대목들의 현장이 그렇듯 비슷한 형태의 나무 재단용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시골에서는 톱밥 모아다가 비료로도 쓰고 화장실에도 쓰고 여기저기 활용하겠는데 서울에서는 불 지피는 데 외엔 크게 사용할 곳이 없다. 사진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미장이 김득혁 씨, 북촌HRC의 황명주 씨, 대목 홍인조 씨와 문석환 씨, 북촌 HRC 김장권 대표, 대목 이유만 씨가 계동 공사현장에 모였다. 김득혁 씨가 입은 갈색 체크 집업 점퍼는 갤럭시, 검정 머플러는 코데즈컴바인. 황명주 씨가 입은 블루 체크 프린트 니트는 갤럭시. 홍인조 씨가 입은 빨간 니트는 갤럭시, 아가일 패턴의 브이넥 카디건은 막스앤스펜서. 이유만 씨가 입은 퍼 트리밍된 블루 니트 집업 카디건은 갤럭시 제품. 대목부터 미장이까지, 북촌 한옥을 짓는 사람들 종로구 계동에 자리한 미완의 공간에 북촌 HRC의 김장권 대표와 문석환 대목을 중심으로 한 한옥 장인팀이 모였다. 문석환 씨와 그의 제자 홍인조, 이유만 씨가 기둥을 세우고, 마룻대와 서까래를 놓아 지붕의 구조를 짜놓았으며 그 위에 와공이 기와를 얹어 지붕을 완성했다. 이제는 미장을 할 차례다. 대목들이 기둥과 기둥 사이를 메워 수장을 들여놓으면 미장이가 와서 흙을 바른다. 미장을 맡은 김득혁 씨는 꼼꼼하게 그려진 도면에 따라 기왓장을 이용해 담에 물고기 문양도 넣는 등 좁은 마당이지만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미장이 끝난 뒤에는 창호장이 만들어 온 창과 문을 달아 집을 완성할 것이다. 이 집을 설계한 김장권 씨는 한옥을 보수·개축하며 한옥 짓는 방법을 배운 뒤 지난 1998년부터 북촌에만 100채 이상의 생활 한옥을 지었다. 그는 스스로를 대중적인 생활 한옥을 짓는 사람이라 말한다. 작품이기보다는 생활에 유용한 살림집을 만드는 것이다. 그때마다 문석환 씨는 김장권 씨와 참 많이 대립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방식대로 짓고 싶은 대목의 욕심과 요즘 사람들의 생활에 맞게 변화를 주고 싶은 건축가의 욕심이 상충했기 때문이다. 이 둘이 함께 일한 지 벌써 8년이 지났다. 문석환 씨는 열다섯 나이에 목수 일을 시작했고 1952~53년 즈음에는 요즘 말하는 땅 장수들이 북촌 일대의 땅을 대거 사들여 마구잡이로 집을 지어 판매하던 시절에 북촌 한옥을 지었다.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북촌에서 한옥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훨씬 작업하기 까다로운 환경이 되었다.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집주인을 만나고 설계하는 역할은 이제 건축가의 몫이 되었고, 대목은 그 이후의 단계부터 참여하게 된다는 점이다. 건축가의 도면에 대목의 연필 끝에서 나온 그림이 더해져 현장은 일사불란하게 돌아간다. 사내들끼리 하는 일이어서 거칠지만 재미있고 현장감도 넘쳐나는 그곳은 말 그대로 공사장이지만 양식 건축의 현장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기운이나 철을 갈아내는 날카로운 소리 같은 것은 없었다. 대신 둔탁하지만 정겨운 나무 망치 소리, 강약이 있는 톱질 소리에 사람 소리가 뒤섞여 활기찬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해묵은 나무와 동백기름이면 됐지” 가구장 설석철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보유자) “얼마 전에는 아이에게 아토피가 있다며 집에 있는 가구를 전통 가구로 바꾸겠다고 찾아왔어요. 요즘 가구들이 보기에는 겁나게 좋은데 몸에는 별로 안 좋은가 봅디다.” 설석철 옹이 까다롭게 고른 20~40년 된 나무를 해와 바람에 몇 년씩 건조시킨 뒤 손으로 깎고 끼워 맞춰 동백기름 발라서 완성한 가구만 하겠는가?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도 사람 손으로 하는 것만 못해서 초벌 작업 정도만 기계로 하고 나머지는 일일이 손으로 작업한다는 설석철 옹의 작업실은 1970년부터 그곳에서 사용해온 도구들이 차곡차곡 쌓여 기묘한 보물창고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젊어서 나무 조각 파편에 눈을 다쳐 지금은 한쪽 눈이 안 보이고 몸도 불편하여, 광주대 가구디자인학과에 출강하고 있는 막내를 포함해 세 아들(4형제 중 첫째는 서울에서 건축 설계사로 활동하고 있다)이 손과 눈이 되어 함께 가구를 만든다. 그래도 그의 열정과 손끝의 감각은 아직 살아 있다. 젊은 시절엔 몸이 약해 농사도 못 짓고, 산속에서 자랐기에 아버지를 따라 ‘목수 일이나’ 배운 것이 그의 나이 열 일곱. 그로부터 예순 해가 지난 2001년에는 국가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 55호 소목장 보유자로 이정받았다. 그렇게 연장 궤짝 하나 들고 시작된 기나긴 여정이 이제는 그의 아들 대로 넘어가고 있다. 동은 설석철 옹은 여든 세살이 되던 2007년에 우리나라 국새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해 국새 의장용 함을 제작하기도 했다. 장과 농, 상을 비롯해 함, 궤 등을 장식을 줄여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최대한 살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관이나 잠원동 동은 소목공방(02-535-4537)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설석철 옹의 작업실. 1970년부터 여기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구에 들어갈 장석(장식)을 만드는 작업대 위로는 장석 만들 때 쓰는 다양한 도구들이 놓여 있다. 청계천에서 좋은 철물 사다가 여기서 깎고 다듬고 조각한다. “이치대로 살과 살을 끼워 맞춘다” 창호장 박천동 40여 년 동안 한옥에 들어갈 창호를 만들어온 박천동 씨는 “내가 가진 손과 재주로 떳떳하게 일하고, 하나 남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이라는 이유로 목수 일이 좋다고 말한다. 자식들이 어렸을 때는 장난감이며 가구를 다 만들어주고, 그렇게 채우고 맞추며 사는 것이 인생 아니겠냐고 말하는 그. “창호가 딱 그래요. 욕심 부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이치理致대로 하나씩 맞춰나가야 하죠. 이건 사찰에 쓰일 꽃살이에요. 꽃 따로 잎 따로 만들어 붙이지 않고, 꽃과 횡으로 놓인 잎을 한 살에 조각하고, 종으로 놓인 잎만 다시 또 한 살에 조각해 둘을 수직으로 끼워 맞추는 것이죠. 한옥은 평생을 가는 건축물이잖아요. 그런데 좀 더 편하고 쉽게 하자고 다 따로 만들어서 붙이면 쩍쩍 갈라지고 떨어지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가 많아지죠.” 그는 최대한 옛날 것을 계승하고자 하지만 요즘에는 도시 한옥이 증가하면서 나무에 유리도 끼우는 식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간이 날 때면 틈틈이 가구를 만들어 보기도 하는데. 전통 가구 만들기는 일종의 취미생활이다. 창호도 그랬지만 가구도 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 요즘 그가 작업하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바로 조급함이다. “한옥이란 것은 시간을 갖고 지어야 하는데, 자꾸 빨리 해달라고 조르는 거죠. 아무리 급해도 손이 들어갈 만큼은 다 들어가야 하는데, 하다 말 수는 없잖아요.” 서울에서 가구를 만들다 내려온 제자와 아들, 이 셋이 밤낮 없이 만들어도 원하는 날짜를 맞추기 힘들 때가 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한쪽에서는 쉼 없이 전기 톱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가 가장 재미있어하는 불발기창이다. 외국인들도 감탄하는 들어열개문과 짝을 이루는 그것. 박천동 씨는 옥산목공소를 운영하며 한옥의 창호를 만들고 있다. 문화재청 지정 문화재 수리 기능자로 인정받아 아름지기 함양한옥, 신라호텔 폐백실, 임페리어 팰리스 호텔 한식 뷔페, 부암동 한옥 등의 창호를 제작했다. 현재 진행 중인 대표적인 작업으로는 경주 갑사에 짓고 있는 박물관의 창호 제작이 있다. 충청남도 부여에 있는 옥산목공소가 박천동 씨의 일터다. 대목들이 주로 현장에서 일한다면, 창호장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창과 문을 완성해 현장으로 보낸다. 높은 천장의 그의 작업실 한쪽엔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용인 희원의 꽃담. 화사한 색감에 정교한 디테일로 아름다운 볼거리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바로 서성환 화담장 같은 이가 아닐까. 그에겐 따로 전시장이 필요 없을 듯하다. “담 위에 꽃도 피우고 십장생도 살게 하지요” 화문장 서성환 가옥의 둘레를 따라 이어지는 전통 담은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그 제작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땅의 기초를 다진 후 장대석과 사구석을 쌓고, 정교하게 계산해 문양을 쌓고, 강회다짐으로 속을 채우고, 기와를 올리고…. 가장 손이 많이 간다는 꽃담은 10m 정도를 완성하는 데 꼬박 세 달이 걸린다. 전통 담은 땅의 모양새에 따라서도 달라졌고, 지역, 재료, 신분에 따라서도 제각기 달라졌는데 그 안에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었다. “궁궐에서나 볼 수 있었던 꽃담은 직각과 직선으로 이어졌어요. 이는 왕가의 권위를 살리면서도 담의 문양이 잘 표현되도록 한 것이죠. 민가에서 쌓던 막돌담은 집 둘레를 휘둘러가며 쌓은 것인데, 막돌담은 그처럼 곡선으로 쌓아야 담이 넘어가지 않고 힘의 균형을 잘 유지합니다.” 열여덟 살부터 평생 전통 담을 만들어온 서성환 화문장은 나이 사십이 되어서야 “비로소 스스로 만든 담에 만족했다”고 한다. ‘마흔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에게는 담이 곧 자신의 얼굴이었던 셈이다. 젊은 시절에는 재래식으로 손수 만들다가 요즘에는 편리한 기계가 많이 나와서 일이 한결 빠르고 수월해졌다. 그럼에도 배우려는 사람들이 오래 견디지 못해 안타깝다고. “땅에서와 마찬가지로 담장 위에도 꽃을 피우려면 힘이 드는데 말이지요.” 일하면서 들이마신 먼지 때문인지 목이 쉽게 잠긴다는 그는, 경복궁과 운현궁, 청와대부터 재일교포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는 오사카 꽃 박람회 한국관, 프랑스 파리의 서울공원 담까지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전통 담장을 통해 소박하고 아름다운 한국의 멋을 알리고 있다. 서성환 씨는 나이 열여덟 때부터 궁궐 화문장이었던 한 씨 노인에게서 일을 배웠다. 청와대 본관과 살림집, 경복궁, 운현궁, 호암미술관 전통 정원 희원, 아름지기 함양한옥 등 전국의 내로라하는 명소와, 일본 오사카 꽃박람회 한국관, 파리의 서울공원 등 세계 곳곳에서 소박하고, 때로는 화려한 전통 담을 선보이고 있다. “한옥은 결국 큰 가구입니다” 가구장 노행용 투박한 손은 목수의 이력서나 매한가지다. 나이테마냥 늘어선 굳은살 하나하나에 인생이 박히고 연륜이 박힌 탓이다. 솜씨 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노행용 소목이지만, 그런 연륜이 없었다면 ‘아름지기 함양한옥’의 복원 전 과정을 감독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다. 소싯적 한옥 수리하는 곳을 들며 나며 눈으로 익혀둔 게 도움이 되긴 했지만, 본업이 가구장인 그에게 어쨌든 한옥 공사는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촌이다 보니 제대로 된 일꾼 구하기도 쉽지 않고 어려움이 많았어요. 특히 목욕채에 억새 지붕을 얹어야 하는데 그 일을 해본 사람이 있어야죠. 이렇게 궁리하고 저렇게 연구하면서 어렵사리 완성한 터라 볼 때마다 흐뭇해요.” 황토 돌벽에 억새 지붕을 얹은 함양한옥의 목욕채는 ‘한옥도 이렇게 편리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절로 나오게 하는 곳이다. “한옥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업그레이드했다고 해야 할까요? 함양한옥은 그 완벽한 샘플이자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작업에 참여했으니 보람이 클 수밖에요. 게다가 머무는 분마다 이런 한옥도 있네요 칭찬해주시니 목수에게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지요.” 첫 작품을 이토록 훌륭하게 완성한 이도 흔치 않을 법한데, 정작 노행용 소목은 별로 한 일이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런 그에게 한옥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냐 물으니 “안 중요한 게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한옥 짓는 덴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가 없어요. 깔끔하게 뒷마무리를 해줘야 다음 단계로 수월하게 넘어갈 수가 있지요. 흙 한 줌을 올려도 정성스럽게 해야 해요. 어느 한 부분도 소홀할 수가 없죠.” 역시나 제대로 된 한옥은 제대로 된 목수의 손에서 지어지는 법인가 보다. 노행용 씨는 전통 한옥 문화 체험관인 ‘아름지기 함양한옥’의 복원 공사를 진두 지휘했다. 현장 공사 감독으로 상량에서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함께했다. 열예닐곱 살 무렵 목수 일에 입문, 45년여 동안 가구를 만들고 있다. 원래는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한옥 짓는 일도 해보았다는 노행용 가구장. 그의 작업실은 구석구석 숨겨놓은 비법이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스트라이프 패턴의 폴로 티는 발리, 아가일 패턴의 스웨터는 프레드 페리 제품.
<행복> 독자 5백73명에게 물었습니다 한옥을 짓는다면 건축 예산을 얼마로 예상하십니까?(대지 30평형 기준, 대지 구입비 불포함) ① 2억 원(25%) ② 3억 원(33%) ③ 4억 원(12%) ④ 5억 원(22%) ⑤ 5억 원 이상(8%) - 북촌 HRC 김장권 대표는 일반적으로 북촌에 지어지는 한옥의 평당 공사비가 1천~1천 5백만 원이라고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1천 만원 이하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땅을 매입하는 비용을 제외한 것으로 건축가마다 차이가 나지만 어림잡아 이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합니다. 대지 매입 비용을 제외한 건축비 예산을 3억 원가량으로 예상하고 있다면 북촌 일대에 30평형 정도의 한옥을 한 채 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어림잡음입니다. 한옥 거주 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냉·난방(41%) ② 동선의 비효율성(10%) ③ 주차(10%) ④ 수납(3.5%) ⑤ 건축비 또는 주택 유지비(25%) ⑥ 신축이나 개?보수에 관련한 법규(3.5%) ⑦ 기타(7%) - 한옥이 춥다는 것은 이제 옛말입니다. 예전에는 갑창(방한을 위해 안쪽을 이중으로 만든 창)을 만들어 이중, 삼중으로 문을 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면, 요즘에는 창에 유리를 끼워 넣는다거나 시스템 창호를 사용하는 등 현대적인 방식과의 결합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벽돌을 쌓아 벽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산자(가는 나뭇가지를 엮은 것)를 이용해 사이에 스티로폼을 넣은 뒤 앞뒤로 진흙을 발라 벽을 만들기도 하는 등 전통적인 방식을 응용한 개량화 작업과 현대적인 방식과의 접목을 통해 방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 수납 문제도 많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좁은 한옥일지라도 옷을 수납하기 위한 벽장을 따로 만들고, 지하 공간과 다락을 내어 공간 활용도를 최대한 높이는 등 한 치도 버려지는 공간이 없도록 합니다. 그래서 실제 집의 평수보다 열 평은 더 넓고, 활용도도 뛰어나게 지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박석규 대목이 <행복> 독자에게 전합니다 천 년을 가는 한옥을 지을 때 꼭 알아야 할 네 가지 1. 한옥 건축의 최적기는 10월에서 4월 사이 산림청에서는 소나무를 벌목하여 다른 수종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매년 합니다. 보통 10~1월에 벌목하여 제재소로 보내진 소나무는 따뜻한 봄볕과 봄비 속에서 단련이 됩니다. 그러면 3~4월에 목수들이 치목한 뒤산에서 새로 내려온 소나무로 집을 짓는 것입니다. 바로 이때의 나무가 가장 깨끗하고 예쁩니다. 소나무 본래의 뽀얀 속살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2. 지붕에 신경 쓰자 한옥은 목조건물입니다. 지붕에 물이 조금이라도 들어오면 나무가 썩기 쉽지요. 따라서 지붕을 꼼꼼히 체크해야 합니다. 서까래 위에 송판을 덮거나 한지, 대나무, 참나무 같은 것을 엮어 흙도 바르고 꾹꾹 다진 뒤 기와를 얹으면 지붕이 완성되는데, 여기서 흙을 충분히 다지지 않거나 기와의 배열에 문제가 있어 비가 새면 서까래부터 대들보를 거쳐 기둥까지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게 됩니다. 특히 한옥의 핵심 부재인 추녀가 상하게 되면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여름 장마철엔 기둥을 주시하자 생활 한옥은 처마가 길지 않으므로 비가 들이쳐 기둥이 상할 확률이 높습니다. 집을 지탱해주는 기둥,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인 밑뿌리 쪽에서부터 보이지 않게 썩을 수 있으니 꾸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4. 병충해를 방지하자 기둥 밑처럼 병충해를 입기 쉬운 부분에는 약품 처리를 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소금을 뿌려 방부·방충 효과를 보기도 했는데 요즘은 워낙 좋은 약품이 많이 나와 약품 처리만 주기적으로 해주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손은 많이 가지만 그것이 또 한옥 사는 맛이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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