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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을 찾아서]가회동 김일형 씨 댁 본문

&& LUXUTE &&/LIVING&TRAVEL

한옥을 찾아서]가회동 김일형 씨 댁

dhgfykl; 2010. 6. 3. 01:25

이 한옥에는 잠시도 가만있을 줄 모르는 개구쟁이 두 아들과 젊은 부부가 산다. 김일형 씨 부부는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맞춘 집이라고 말한다. 해를 들이는 창과 아담한 흙마당이 있는 이 집에서 아이들은 구김 없이 자유롭게 자란다.

(위쪽) 대문으로 들어와 오른쪽의 낮은 담을 끼고 돌아서면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로 둘러싸인 한옥이 나타난다. 햇빛과 바람을 가득 들이는 이 한옥에서 네 식구의 일상은 매일매일 따뜻한 드라마를 연출한다.  

흡사 가족 드라마에 나오는 집 같다. 삐거덕거리는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타나는 마당, 거기에 장난감 자동차며 자전거, 미끄럼틀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습, 무뚝뚝한 댓돌과 반질한 나무 문살로 손님을 맞는 한옥. 당장이라도 미닫이문을 열고 여기저기서 할아버지며 삼촌, 고모와 같은 식구들이 고개를 내밀고 퉁명스럽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것만 같다. 3대에 걸친 가족으로 북적이는, 정겹고 약간은 보수적인 집.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네 집이나 <사랑과 야망>의 태수의 집 같은, 김수현 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대가족의 집이 떠오른다.

그 같은 연상 작용은 아마도 이 집에 배어 있는 세월의 흔적 때문인 듯하다. 이 한옥은 1934년에 지은 것으로 비교적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저희 부부가 한옥에 살 결심을 하고서 처음 둘러본 한옥이 바로 이 집이었어요. 할머니 한 분이 시집 와서부터 그때까지 살고 계셨는데, 얼핏 보기에 현대식으로 내부를 개조하지 않아 한눈에 좋은 집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 곳이었죠. 하지만 내부 시설이나 살림을 빼고 건물의 뼈대만 본다면 옛 정취를 잘 간직한 좋은 집이었어요.”

1 ㅁ자 한옥의 중앙 마당은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도록 먼지 나는 흙 대신 돌을 깔았다. 마당 가운데 고고한 소나무와 파란 플라스틱 의자가 재미있는 대구를 이룬다.
2 집 뒤의 작은 마당은 흙바닥을 그대로 살려 한옥 특유의 운치를 자아낸다.
3 뒷마당 두꺼비 물확 옆으로 아이들이 흙장난하던 장난감이 흩어져 있다. 한옥은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다.

그들이 이 집과 인연을 맺게 된 과정이 또 한 편의 드라마다. 처음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던 이 한옥을 보고 곧 마음에 들었지만 대지 198㎡(60평)의 집값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가회동·계동 일대의 한옥들을 1년 가까이 둘러보다가 결국 다른 한옥을 계약하게 되었다. 그러나 계약한 집은 교통이 불편한 골목도, 집이 생긴 모양도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미 일은 착착 진행되어 레노베이션할 설계도도 완성되었고, 그 전에 살던 가족의 짐도 빠져나간 상태였다. 짐이 나간 자리를 청소하던 김일형 씨는 방바닥을 닦다가 불현듯 할머니의 한옥을 다시 찾았다. 몇 개월 동안 집은 팔리지 않았고 가격은 조금 떨어져 있었던 것. 그리고 김일형 씨는 그새 회사를 옮겨 약간의 퇴직금이 생긴 상태. “할머니, 이 집에 꼭 살고 싶은데 조금만 더 깎아주세요.” “그렇게 하세요 그럼.” 이리하여 중간에 샀던 집은 한옥 보존 사업을 하는 서울시에 되팔고 이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처음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2007년 7월 공사를 끝내고 입주하기까지 꼬박 2년 6개월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왼쪽) 세월의 흔적이 나뭇결마다 묻어나는 대청마루. 오래된 한옥 마루 안으로 따사로운 햇빛이 가득 들어온다. 현재 이 집의 주인인 김일형 씨 부부도 문과 기둥, 기와 등 기존의 것을 최대한 살려 레노베이션했고, 그 전에 살던 할머니도 거의 집에 손대지 않은 채 살았다.
(오른쪽) 한창 개구쟁이인 두 사내아이는 이 집에서 걸어다니는 법이 없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신나게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고 뒤뜰에서 흙장난을 하다가 툇마루에서 아빠와 함께 해바라기하다가 까무룩 잠이 든다.

레노베이션을 맡은 구가건축의 조정구 소장은 이 한옥의 매력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과거의 한옥이 담고 있는 시간성을 보존하는 것이 가치가 있으니 되도록 바꾸지 말 것을 적극 당부했고, 김일형 씨 부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레노베이션을 했지만 비용과 노력으로는 새로 짓는 것보다 덜하지 않았을 거예요. 기와는 모두 내린 후 아직 쓸 만한 것은 살리고 깨진 것은 교체하는 ‘뒤집기’를 했고요, 수납공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 지하 공간을 만들었는데 지붕이며 기둥을 몽땅 해체해 들어낸 다음 지하를 파서 다시 조립해 얹었어요.

수십 년 동안 까맣게 때가 탄 기둥이며 서까래의 나무는 깎아내어 새살이 드러나게 했고, 옛날 문양의 유리창도 그대로 살리고 싶어 깨끗하게 닦아냈지요.” 안채, 사랑채, 문간채로 되어 있던 본래의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모두 신발을 갈아 신지 않고 이동할 수 있도록 내부 동선을 통합했다. 안방, 아이방, 건넌방 등 모든 방에는 황토 벽체에 한지 벽지를 바르고, 바닥 역시 한지로 마감해 옛 맛을 살렸다. 가운데 마당은 아이들이 뛰어놀기 편하도록 먼지 나는 흙 대신 돌을 깔고, 아이들 방 아래쪽으로 한 칸짜리 지하 방을 만들어 옷과 책을 수납할 수 있도록 했다. 기능적인 공간인 주방과 욕실은 대대적으로 현대적인 레노베이션을 한 곳. 주방에는 타일을 깔고 현대식 주방 가구를 배치, 서까래 지붕과 창만 아니라면 일반 주택의 주방과 다름없도록 했고, 이는 욕실도 마찬가지다.

1 가구를 두기 힘든 한옥의 특성상 수납공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 별도로 지하 공간을 만들었다. 별도의 수납장을 방 양쪽으로 붙박이로 짜 넣고 한지 창호로 문을 만들어 달았더니 깔끔하다. 대형 TV를 두어 홈시어터 공간으로 쓰도록 했는데, 아늑한 비밀 아지트 같은 이 공간은 집들이를 할 때마다 많은 남자 손님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 집의 레노베이션은 구가도시건축(02-3789-3372)의 조정구 소장이 담당했다. 
2 두 형제가 사이좋게 잠드는 이층 침대가 놓인 아이들 방. 아이들은 잠잘 때뿐만 아니라 깨어 있을 때에도 이층 침대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장난치기에 바쁘다. 처음 한옥으로 이사 와서는 창호지에 구멍도 많이 냈지만, 엄하게 주의를 준 뒤로는 기특하게도 구멍 내는 일이 거의 없다. 
3 안방과 연결된 공간에는 서까래 지붕 아래에 꾸민 조그마한 다락이 있다. 주로 김일형 씨가 못다한 회사 업무를 처리하는 서재 공간으로 쓰인다고. 왼쪽의 작은 창문을 열면 주방이 내려다보인다. 아이들이 이 작은 창문을 열고 주방에 있는 엄마에게 “자장면 한 그릇!” 하고 주문하기를 즐긴다.

김일형 씨는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매일 이 집에 들를 정도로 애정과 공을 들였다. “우연히 한 잡지에서 저희처럼 젊은 부부가 한옥을 구해 사는 이야기를 읽고 시작된 일이었어요. 원래는 이사할 시기가 돼서 아파트를 알아보았는데, 모르던 바는 아니었지만 실제 가치에 비해 턱없이 비싸기만 한 아파트 값에 혀가 내둘러지더라구요. 한옥을 구하고 레노베이션하고 완성하기까지 결코 아파트 계약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보람을 느낀답니다.” 이제 두 사내아이들은 층간 소음 걱정 없이 신나게 뛰어다니고 환경 호르몬 걱정 없는 방에서 잠이 든다. 온 가족 모두 햇빛과 바람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계절마다 신록과 단풍과 눈을 감상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 집에 이사 온 뒤로는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방문하셔서 전보다 훨씬 오래 머물다 가신다고. 어르신들이니 갑갑한 아파트보다 한옥에서 생활하는 맛을 얼마나 더 좋아할까. 손님방과 안방이 ㄷ자형 구조로 거리를 둔 덕에 방문만 열면 얼굴 마주치는 아파트와 달리 어른이 오래 머물러 계셔도 불편함이 없다.

1 큰아이가 다락 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엄마에게 우렁차게 요리를 주문 중이다.
2 현대식으로 레노베이션하여 편리하고 쾌적한 욕실.
3 아이들 놀이방의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이 집에서 가장 운치 있고 아름다운 전망.

어느 일요일 오후 풍경. 마루에서는 라디오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작은아이는 마당에서 장난감 자동차를 타느라 신이 났다. 큰아이는 서까래 지붕 아래의 다락에서 작은 창문을 열고 부엌으로 얼굴을 내밀며 “엄마, 자장면 두 그릇!” 하고 주문을 한다. 그러고는 방과 마루를 줄기차게 뛰어다니더니 기어이 안방 창호에 구멍을 내는 사고 발생. 이윽고 마당에서는 작은 아이가 넘어져 울음보가 터지고, 지하에서 뜨개질을 하던 외할머니가 총총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온다. 결국 ‘할머니와 문방구에 가자’는 소리에 눈물을 거두고 대문을 나선다. 가만 보고 있자니 이 가족 드라마의 작가는 ‘집’인 듯하다. 대문과 마당, 다락과 마루, 지붕과 창 등 한옥이 품고 있는 크고 작은 공간들이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아마도 세월이 더할수록 네 가족의 추억과 비밀, 사랑과 눈물이 공간마다 깃들게 될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풍요롭고 따뜻하게 깊어만 간다.

(왼쪽) 안방 문 오른쪽에는 인기척에 방문객을 확인하는 용도였던 작은 창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오른쪽) 기와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한곳으로 모아주는 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