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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을 찾아서] 국민대학교 명원민속관 본문

&& LUXUTE &&/LIVING&TRAVEL

한옥을 찾아서] 국민대학교 명원민속관

dhgfykl; 2010. 6. 3. 01:22

바람이 주인이고 사람은 객이라네
1백여 년 역사를 지닌 조선시대 양반 가옥 한규설 대감 고택을 이전하며 연못과 정자, 초당을 세워 완성한 국민대학교 ‘명원민속관’. 조선시대 상류층 저택의 면모를 살펴보며 더위도 피해 갈 수 있는 이곳은 더 이상 살림집이 아니다. 다도와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1 안채의 대청마루를 통해 바라본 풍경. 이곳의 핵심 인물 최왕돈 관장(오른쪽)과 수업과 안내를 맡고 있는 서미숙 씨(왼쪽), 그리고 마당 지킴이 누렁이가 모였다. 
2 사랑방의 모습. 옛날 학문을 갈고 닦던 공간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창밖 풍경이 한눈에 계절감을 느끼게 해준다. 
3 사랑채의 마루. 사랑방의 사분합문을 들어 올려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융통성 있는 집, 한옥의 특징을 잘 살려준다. 
4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중문.

차 문화 부흥의 의지를 담다
그저 가만히 놓아두어도 뚜렷한 계절감을 공간 깊숙이 끌어들이는 것이 한옥의 매력이다. 30℃를 육박하는 때 이른 무더위 속에서 찾은 명원민속관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풍광이 있어 그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연못과 마당의 나무를 스쳐 온 바람은 활짝 들어 올린 문을 통과하면서 특별한 정취를 만든다. 대청과 방이 시원한 것이 이곳에 앉으면 청량한 공기를 선사받는다. 여기선 오히려 바람이 주인이고 사람은 객이 된다.

복잡한 도시에서 이런 공간을 맛본다는 것은 분명 흔치 않은 경험이다. 서울 시내에서 1백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한옥은 손으로 꼽기도 힘들다는데, 1890년경 지어진 이곳은 서울시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조선시대 한성판윤에 고등재판소 재판장 등을 지낸 한규설 대감의 집으로, 중구 장교동에 있었던 고택을 1980년 도시 재개발로 멸실될 위기에 처하자 이전해 온 것이다. 이를 추진했던 사람은 바로 고 명원 김미희 여사. 그는 국민대학교의 발전을 일군 성곡 김성곤 선생의 부인으로 1968년부터 전통 차 문화를 연구하며 한국에서 잊혀지던 차 문화 부흥을 위해 노력했다. 그가 이 집의 원래 소유주로부터 무상으로 기증받아 다례와 전통문화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펼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다실인 ‘녹약재’의 이름을 따라 ‘녹약정’이란 정자와 연못을 만들고, 다성 초의선사(조선 후기 한국 차 문화를 중흥시킨 인물)가 기거하던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 일지암과 동일한 형태로 초당을 지었다. 이렇게 한규설 대감 고택을 원형 그대로 이전해 온 문채, 사랑채, 안채, 사당채에 두 가지 영역이 더해져 지금의 명원민속관이 완성되었다. 또 손실된 솟을대문을 복구했다.


1 활짝 열어놓은 창이 마치 액자처럼 보이는 안방. 
2 안채 대청에 다례 수업을 위한 다구를 준비해놓았다.
3 안방에 놓인 찻주전자와 찻잔.
4 사랑채 마루에서 최왕돈 관장.

60칸 조선시대 상류층 저택의 전형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주택 규모를 제한했는데, 시행 초기 대군은 60칸, 군과 옹주는 50칸, 종친과 2품 이상은 40칸, 3품 이하는 30칸, 서인은 10칸으로 정해놓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의 효력은 약화되었고 개인 집이 1백 칸을 넘을 수 없다는 규제 아래 편법적으로 1백 칸 내외의 집을 짓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늘날 그 원형을 간직한 집을 특히 서울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것도 살림집으로. 창덕궁 내 연경당처럼 99칸 규모인 집도 있으나, 이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생활상을 파악하기 위해 실제 주택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지은 일종의 견본이라 할 수 있다.

한규설 대감의 고택은 60칸, 전형적인 조선시대 상류층 저택이다. 대문은 주인의 지체를 상징하는 솟을대문이며 가마를 타고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규모다. 이를 지나면 이내 두 개의 중문이 나타난다. 하나는 사랑채로, 다른 하나는 안채로 향한다. 사랑채의 절정은 사분합문(4개로 분할된 문). 이를 들어 열면 사통팔달 ‘바람 길’이 생긴다. 동시에 마당의 나무와 담장, 안채의 지붕 선을 살며시 담아낸 액자가 만들어진다. 전통 건축을 이야기할 때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차경借景(외부 경치를 내부로 끌어들인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표현)의 묘미일 것이다. 안채는 대문으로부터 먼 북쪽에 자리 잡았다. 안방, 대청 그리고 건넌방으로 이뤄졌고 뒤쪽으로 부엌과 찬방이 있다. 방과 마당의 면적이 넓어 과거 가족들의 대소사를 치렀던 다채로운 성격의 공간이 지금은 수업이나 여러 가지 행사의 무대가 되고 있다. 이 외에 다도 체험을 위한 학생 동아리 ‘명운다회’의 공간이 되어버린 별채에 사당까지 갖췄고, 채별로 행랑마당, 사랑마당, 안마당, 사당마당이 있다.


1 한규설 대감 고택의 전경. 사진 왼쪽 위쪽의 솟아나온 지붕이 솟을대문이다. 가운데 자리 잡은 큰 ㄱ자형 건물이 안채, 그 뒤 오른쪽으로 보이는 ㄱ자형 건물이 사랑채이다. 안채 양옆 담을 따라 있는 건물은 각각 사당(왼쪽)과 별채이다.
2 높이로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는 솟을대문.

결핍을 해소하는 공간
“융통성이 있고 개방적이란 것이 한옥의 매력 아닐까요? 거기에 바람이 들려주는 풍경 소리에, 문만 열면 언제든 푸른 자연을 볼 수 있지요.” 명원민속관 최왕돈 관장의 말이다.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며 이제 막 관장의 자리에 오른 그는 사실 한옥과 벌써부터 인연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나, 어린 시절 한옥에서 살았다. 그것도 중요미술자료와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집, 대구 옥골마을의 ‘삼가헌(박황 가옥)’에서. 여기서 지낸 3년이란 시간은 결코 길지 않지만 한옥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심어주기엔 충분했다고 말한다. 그가 이곳에 살면서 마음속에 담아둔 한옥의 모습은 항상 자연과 함께 있는 집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한복판에 있는 이 고택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 요즘 한옥은 마당이 여유롭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자연으로 둘러싸인 진짜 한옥의 멋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종종 학생들과 이곳에서 건축 수업을 하며 한옥이란 공간이 주는 풍부한 경험을 체득할 수 있게 한다.

“날씨 좋은 날이면 야외 수업을 하자고 해요. 그러면 학생들은 좋아하죠. 요즘 학생들은 야외 수업이라고 하면 호프집이나 식당 같은 곳을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곳에 데려오면 처음엔 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즐기는 모습을 보게 돼요. 수업을 하기에도 참 좋습니다. 소음도 없고, 특별히 수업을 방해할 만한 요소가 없죠. 새소리, 바람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 가끔 개 짖는 소리 정도만 들릴 뿐이죠.” 이곳에선 크게 국민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교양 수업으로 다례와 연관 학과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건축 수업이 주로 진행된다. 이 외에도 가끔 전통문화 행사를 개최하며, 유치원생,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전통 건축 및 다례 체험 공간으로 일반인에게도 항상 열려 있다.

건축 중에서도 한옥처럼 예민한 것이 없다 한다. 매일 사람의 손길이 닿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의 차이가 뚜렷하다. 오래된 집일수록 더욱 그렇다. 꾸준히 이용하고 보존해야 할 공간이기에 관리와 이용의 균형을 잘 조절해야 하는 가운데, 최왕돈 관장은 이곳이 좀 더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편하고 기능적인 공간만이 좋은 것은 아니잖아요. 한 발짝만 움직여도 이렇게 자연에 맞닿아 그것을 느낄 수 있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환경 속에서는 이런 느낌이 많이 결핍되어 있는 것 같아요. 진짜 편한 것, 쾌적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돼요.”

* 이곳은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 국민대학교 후문 옆에 자리 잡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하며, 사전 예약을 하면 사랑채의 내부까지 모두 볼 수 있다. 7, 8월 방학기간 동안에는 내부 정비가 있으므로, 사전에 관람 가능 시간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관람료 무료. 일요일 및 휴일은 휴관. 문의 02-910-4291, 4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