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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복씨에게 배우는 백령도 토속음식 & 늙은 호박김치와 짠지떡 본문

음식&요리/Food & Cooking

김선복씨에게 배우는 백령도 토속음식 & 늙은 호박김치와 짠지떡

dhgfykl; 2010. 2. 3. 19:46

김선복씨에게 배우는 백령도 토속음식
늙은 호박김치와 짠지떡
입맛만큼 보수적이고 주관적인 것이 또 있을까? 이희중 시인은 “오래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가 아는 으뜸 된장 맛도 지상에서 사라졌다…. 장차 어머니 돌아가시면 내가 아는 으뜸 김치 맛도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라고 했다. 집요한 그리움을 지닌, 이제는 잊혀가는 내 고향 내 어머니의 맛.

내 고향은 서해 최북단 섬, 북한과 가장 가까운 백령도다. 백령도에서는 인천을 오가는 배가 육지로 통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인데, 그나마 춥거나 날이 궂으면 길게는 한 달씩 뱃길이 끊겨 속수무책이다. 찬 바람 불기 시작하면 백령도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배는 비싼 배삯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에게 부치는 김치와 곡물, 부식으로 늘 만석이다. 고향의 맛을, 어머니의 맛을 못 잊어하는 자식들에게 보내는 어미의 절절한 연서 戀書다.
백령도의 겨울 음식에는 메밀, 굴, 김치, 늙은호박, 두부가 단골로 들어간다. 특히 백령도 사람 중에 늙은호박김치와 짠지떡을 모르면 간첩이다. 집집마다 담가 겨우내 온 식구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 늙은호박김치는 외지에서 백령도로 들어와 살게 된 사람도 인이 박이고야 마는 음식이다. 가을철 고개 숙인 벼를 베어낼 즈음이면 집 앞 밭이랑에는 호박이 덩굴째 누렇게 늙어갔고, 날마다 바다에 나가시는 할아버지는 통통한 알이 그득한 꺽죽이(‘삼식이’의 방언)를 한가득 찍어 오셨다(꺽죽이는 낚시로 잡는 게 아니라 갈고리 같은 도구로 ‘찍는다’고 말한다). 식구 많은 집 종부였던 나의 어머니는 가을배추와 열무, 늙은호박을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리고 독특한 향기가 나는 분지(‘산초’의 방언) 열매와 꺽죽이 알을 넣어 김치를 담갔다. 늙은호박김치가 푹 익으면 반찬으로 그냥 먹기도 하지만, 멸치 넣고 쌀뜨물을 부어 찌개로 끓였을 때 진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한데 어릴 때는 왜 그 맛을 몰랐는지,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어머니가 호박김치찌개를 끓여주시면 그냥 싫었다.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방학 때 백령도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늙은호박김치찌개를 푹 끓이고 짠지떡을 빚어 상을 차려주셨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결국은 어머니를 서운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다 불현듯 어머니의 늙은호박김치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당장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김치를 부탁했지만 안타깝게도 꺽죽이도 늙은 호박도 제때가 아니어서 구할 수 없었다. 내 입맛이 철이 든 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릴 때 맑은 날 바다 건너 황해도를 바라보면 소금을 뿌려놓은 것처럼 하얀 메밀꽃 밭이 보였다. 황해도와 인접한 백령도 역시 메밀을 많이 재배해 겨울철 온갖 음식에 이용했다. 맷돌에 메밀을 직접 타서 체에 내리면 거뭇거뭇한 티가 섞여 있는 거친 메밀가루가 나온다. 이것을 반죽해 면을 뽑아 냉면을 말아 먹곤 했는데, 남은 면은 두었다가 어머니가 바닷가에서 쪼아 온 굴과 송송 썬 김치를 넣고 바글바글 끓였다. 찰기 없고 가느다란 메밀국수가 풀어져 국물이 약간 걸쭉해지면 얼마나 기막히게 맛있던지. 또 메밀가루를 익반죽해 반대기를 지어 송송 썬 배추김치와 굴을 넣고 큼지막하게 만두처럼 빚은 짠지떡은 겨울철 대표 간식이었다. 끓는 물에 짠지떡을 넣고 굴이 익을 정도로 삶은 뒤에 어머니는 손바닥에 들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양손을 비벼 짠지떡에 들기름을 살짝 바르셨다. 그리고 짠지떡을 삶아내고 난 뜨거운 국물은 까나리액젓으로 간해서 음료처럼 마시곤 했다.
도시에서 자취하는 딸을 위해 늘 김치를 비롯해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어 보내주셨던 어머니. 배가 뜨지 않아 자식들에게 늙은호박김치를 부칠 수 없는 날에는 바람에 날려 보냈으면 좋겠다며 자식 생각에 하늘을 향해 많이 우셨단다. 고향 떠난 자식이 어머니의 손맛을 잊지 않도록 하셨던 게 아닐까. 요즘에도 여든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는 환갑의 딸을 위해 가을이면 늙은호박김치를 담가 부치신다. 이젠 그만 하시라고 해도 당신 손맛이 더 좋다며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 실제로 늙은호박김치 맛에 혀끝이 길들여진 후로는 내 손으로 직접 담가 먹지만 어머니가 해주신 게 훨씬 맛있다. 시금시금하고 달짝지근한 늙은 호박에 톡톡 씹히는 꺽죽이 알과 분지의 향이 어우러져 맛이 일품이다. 젊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어머니의 음식이 생각난다. 너무도 그리운 어머니의 따뜻한 음식이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 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할 예정입니다.

백령도식 늙은호박김치와 짠지떡 만들기

늙은호박김치
재료 늙은 호박 1.5kg, 배추 1포기(2.5kg), 무청 500g, 산초 150g, 삼식이 알 250g, 쪽파・갓 100g씩, 대파 1대, 다진 마늘 3큰술, 다진 생강 1큰술, 고춧가루・까나리액젓 3/4컵씩, 찌개용 들기름・쌀뜨물・멸치 적당량

만들기
1 늙은 호박은 통째로 씻어 골대로 길게 썬 뒤 씨를 긁어내고 껍질째 1.5~2cm 두께로 썬다. 배추와 무청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2 물(10컵)에 소금(11/2컵)을 녹여 배추와 무청을 1시간 정도 절인다.
3 절인 배추와 무청을 건져 씻고, 배추 절인 소금물에 늙은 호박을 절인 뒤 건져 씻는다.
4 산초는 10월 중순쯤 열매가 파랗고 껍질이 벗겨지지 않았을 때 송아리째 따서 손질한다. 찬물에 담가 4~5일간 매일 물을 갈아가며 우린 뒤 냉동보관했다가 필요한 만큼씩 물에 씻어 쓴다. 까나리액젓에 담근 장아찌를 물에 담가 짠맛을 뺀 뒤 써도 된다.
5 삼식이 알은 10월 중순에서 11월 중순에 구입해 소금에 절여 냉동보관했다가 물에 씻어 사용한다.
6 쪽파와 갓은 4cm 길이로 썰고, 대파는 어슷하게 썬다.
7 그릇에 늙은 호박, 배추, 무청, 산초, 삼식이 알과 채소 양념을 고루 섞고 고춧가루와 까나리액젓으로 잘 버무려 항아리에 담는다.
8 늙은호박김치가 푹 익으면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볶다가 쌀뜨물과 멸치를 넣어 찌개를 끓인다.


짠지떡
재료 메밀가루 3컵, 찹쌀가루 1컵, 밀가루 11/2컵, 끓는 물 2컵, 배추김치 1/2포기, 굴 2컵, 홍합살 1/2컵, 대파 1대, 다진 마늘 3큰술, 들기름 5큰술, 깨소금 2큰술, 소금・고춧가루 적당량

만들기
1 분량의 메밀가루와 찹쌀가루, 밀가루는 한데 섞어 고운체에 한 번 내린다.
2 ①에 끓는 물을 넣고 고루 치대면서 익반죽한다.
3 잘 익은 배추김치 소를 털어내고 꼭 짜서 물기를 제거한 뒤 송송 썬다. 대파도 송송 썬다.
4 굴(알이 굵지 않은 것이 좋다)은 깨끗이 씻어 체에 밭쳐 물기를 빼고, 홍합살은 씻어 건진 뒤 굵게 다진다.
5 볼에 김치,굴, 홍합살, 대파, 다진 마늘을 넣고 들기름과 깨소금을 섞은 뒤 소금으로 간해 소를 완성한다.
6 ②의 반죽을 떼어 너무 얇지 않게 피를 만들어 ⑤의 소를 넣고 만두보다 큼지막하게 빚는다.
7 빚은 짠지떡은 끓는 물에 삶거나 시루에 찐다. 8 짠지떡이 익어 떠오르면 건져 한 김 식힌 뒤 들기름을 살짝 바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