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를 처음 배우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생생할 수밖에 없다. 태어나서 그만큼 많이 넘어져본 날이 없었다. 스키를 배웠던 곳은 강원도 인제의 ‘알프스 리조트’ 초급자 코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엉덩이로 갈고 닦았는지 눈이 쌓였던 바닥이 빙판으로 변해 있었다. 초급자 코스란, 초급자들을 격리 수용하는 곳이었다. ‘니들은 사람들 방해하지 말고 여기 선 그어놓은 데 옹기종기 모여서 미끄러지고 자빠지면서 스키의 어려움을 느껴봐’라는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뼈저리게 느끼고 또 느꼈다. ‘그래, 어렵다, 너무 어렵다.’ 뼈저리게 느끼고 뼈가 부러지도록 실감했다.
그러니까 스키의 끝을 A자 형태로 만든 다음에 ‘꽈당’, 허리는 펴고 ‘꽈당’, 무릎은 살짝 굽히는 기분으로 ‘꽈당’ ‘꽈당’ 하다 보니 나중에는 넘어지는 게 세상 순리 같기도 하고 넘어지면서 즐겁기도 하고 또 그렇게 세상에 순응하다 보니 도를 깨달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오후가 되고 스키가 조금씩 몸에 익자 시야가 넓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타는지, 자세는 어떤지, 표정은 어떤지, 그런 세세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경악했던 순간은 한 손에 길쭉한 추로스Churros를 들고 스키를 타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였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동작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스키를 타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배가 고파왔다. 추로스가 먹고 싶었다. 나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면서 가게로 걸어갔고 추로스를 주문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발갛게 얼어붙어 있었고 코에서는 콧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탕이 잔뜩 묻은 따뜻한 추로스를 한 입 베어 물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온몸이 욱신거렸고 엉덩이도 아팠고 손은 시렸다. 어쩐지 서러웠다.
오후 스키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황태국으로 유명한 용바위식당(033-462-1079~80). 여느 황태국과 달리 감자와 황태를 넣고 국물을 뿌옇게 끓였는데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이전까지는 황태를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황태국이라는 음식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국을 넘기는 순간 목구멍에서 창자까지 이어진 길다란 슬로프를 흘러 내려가는 뜨듯하고 진한 국물이 느껴졌다. 그것은 위로의 맛이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멍든 자를 달래주는 맛이었다. 스키를 타던 며칠 동안 자주 그 집에 들렀다. 두 번 먹을 때 맛이 달랐고, 세 번 먹을 때 맛이 또 달랐다. 두 번째에는 뭉근한 감자의 질감이 앞으로 드러나더니 세 번째에는 황태의 시원한 국물 맛이 도드라졌다. 음식 맛이 변한 게 아니라 내 컨디션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서울에 돌아와서 유명한 황태국집을 가봤다. 맛이 없었다. 맛이 없었다기보다 감흥이 없었다. 황태국이라는 음식은 내 머릿속이 아닌 내 몸에 입력돼 있었다. 주위는 적당히 추워야 하고, 사방에는 산이 있어야 하고, 몸은 피곤해야 하고, 엉덩이와 다리는 욱신거려야 하고, 발끝은 얼어붙기 직전이어야 하고, 황태국집 방바닥은 뜨끈뜨끈하여 내 발을 녹여줘야만 황태국이 제대로 된 맛을 내는 것이었다. 그 후 ‘알프스 리조트’에 갈 때마다 용바위식당에 들렀다. 역시 그 맛이 제 맛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다. 지금은 추로스를 싫어하게 됐고 스키장에 가본 지도 5년이 넘었다. 뭔가를 새롭게 배우려는 마음도 없어진 것 같다. 가끔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뭔가를 처음 배우고 뭔가를 처음 먹으며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을 때가 있다. 모든 걸 새롭게 깨닫는 초급자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이제는 넘어져도 웃지 않는다. 서투른 걸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러지 말자고, 한겨울의 빙판을 보며 다짐한다. -김중혁(소설가)
스키장에서 맛본 최고의 밥상 강원도 평창·횡성 멸치 국물 우려낸 손 칼국수 식당 주인인 내 입맛도 감동시켜주는 자매식당(033-344-2317).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세 분이 만들어주는, 담백한 멸치 국물에 끓여 낸 칼국수와 만둣국이 끝내준다. 시원하고 칼칼한 깍두기와 김치와 함께 먹으면 가슴 속까지 따뜻한 기운이 올라온다. -허세병(횡성 고깃집 우가 대표)
텃밭에서 가꾼 무공해 쌈밥 들꽃 피는 언덕(033-344-1808)은 스키 시즌이 아니더라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게 되는 곳. 주인 내외가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상추, 적겨자, 신선초, 치커리, 근대 등의 무공해 채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 쌈밥이 1인분에 6천 원. 된장찌개, 게장, 미역, 새우볶음 등 맛깔스러운 밑반찬도 일품이다. 마당 한편의 눈썰매장 덕에 아이들이 더욱 좋아한다. -양재준(포토그래퍼)
최상급 한우 구이 횡성축협프라자(033-345-6160)는 최상급 육질을 자랑하는 1등급 횡성 한우를 맛볼 수 있는 곳. 꽃등심, 제비추리, 안창살 등 세네 가지 특수 부위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모둠 코스가 특히 인기다. 꽃등심 3만 5천 원, 안심 2만 8천 원으로 가격도 저렴한 편. -박민식(회사원)
주물럭과 생태찌개의 궁합 용평회관(033-335-5217) 주물럭과 생등심의 맛은 뭐랄까, 녹는 듯 씹히는 육질과 적당히 고소하고 알맞게 기름진 육즙의 절묘한 조화가 느껴진다. 고기도 고기지만 열 손가락만큼이나 다채롭게 등장하는 갖가지 김치 맛이 예술. 이곳을 찾을 때는 일행이 많을수록 좋겠다. 국물 맛 통쾌한 생태찌개도 반드시 맛봐야 하므로. 과식을 피할 수 없는 이곳은 횡계 큰길 새마을 금고 안쪽에 위치. -심의주(<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장)
강원도 홍천·원주 화끈한 화로구이와 메밀커피 양지말 화로구이(033-435-7533)의 ‘돼지 삼겹살 양념구이’. 고추장과 재래식 된장, 벌꿀을 섞어 만든 고소한 양념 맛은 정말 중독적이다. 커다란 무쇠 화로 위에서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만 들어도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빨리 먹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 단점. 양철 주전자에 담겨 있는 구수한 메밀커피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식이다. -김대현(회사원)
영양 만점 오리고기 전문점 하얀집(033-732-4881)의 오리 진흙 구이는 신나게 겨울 스포츠를 즐기고 난 우리 가족에게 든든한 영양식. 어디서도 이렇게 쫄깃하고 바삭한 오리구이를 먹어본 적이 없다. 오리 뱃속을 가득 채운 인삼 향 풍기는 오곡밥과 시원한 재첩 국물에 말아주는 국수 또한 일품이다. -호수진(대학 강사)
내 집같이 편안한 고깃집 장승(033-342-2315)은 한옥을 개조한 정겨운 실내가 이웃 집에 놀러 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 스키장 주변의 북적대는 인파를 피해 오붓하고 깔끔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고깃집이지만 어린아이가 먹을 수 있는 가정식 밥상을 챙겨주는 주인장의 배려가 고마운 곳. -서진아(약사)
전라북도 무주 구수하고 얼큰한 어죽 무주에 왔으면 어죽을 먹고 가야 한다. 어죽은 마주바, 빠가사리 등 각종 민물고기를 푹 고아 고추장, 된장으로 간하고 미나리, 깻잎, 수제비, 쌀 등을 넣어 푹 끓인 음식. 특히 큰손식당(063-322-3605)의 어죽은 토박들에게 손꼽히는 곳. -김현학(푸드 스타일리스트)
감동적인 콩나물국밥 덕유산 회관(063-322-3780)의 콩나물국밥은 말 그대로 감동이었다. 맑은 북어 국물에 새우젓으로 간하여 김과 곁들여 먹는, 재료가 아주 평범한 음식. 전국에 있는 해장국 집은 다 다녀보았지만 이곳만큼 시원한 국물 맛은 처음이다. -장지현(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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