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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윗대 닭 깻국과 가지찜 본문

음식&요리/Food & Cooking

머윗대 닭 깻국과 가지찜

dhgfykl; 2010. 2. 3. 19:33

머윗대 닭 깻국과 가지찜
한반도가 아무리 작다지만 각 지방의 토속 음식을 들여다보면 그 세계가 얼마나 깊고 다양한지 새삼 놀라게 된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삼복, 광주에서는 닭 삶은 물에 깻국과 머윗대를 넣어 끓여 먹거나 석쇠에 구운 가지에 고기소를 넣어 양념장에 조려 먹었다. 둘 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으로 정성 없이는 완성할 수 없는, 광주 양반집 맛이다.

아쉽게도 내게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내 어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기억 속 고향의 맛은 어머니 대신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의 음식 맛이 전부다. 금성 오씨(지금의 나주 오씨) 집성촌에 살던 우리 집은 종갓집은 아니었지만 종갓집 역할을 했고, 불천위 不遷位(예전에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 神位) 제사까지 모시는 대갓집으로 할머니의 손맛은 큰 살림을 도맡아 하는 안주인답게 늘 맛깔스럽고 정갈했다. 어느 집이나 그렇겠지만, 우리 할머니 역시 손자손녀들을 목숨보다 더 아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강아지’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공부를 시키고, 예절을 가르치셨다.
그런 할머니가 매년 여름 손자손녀들의 건강을 위해 만들어주시던 음식이 바로 삶은 닭과 깻국을 섞어 만드는 모굿대(머위의 줄기, 즉 머윗대를 이르는 전라도 사투리) 닭 깻국이다. 닭은 시골에서 양질의 단백질을 보충하기에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육류였다. 소나 돼지는 한번 잡으면 그 규모가 엄청나서 잔칫날에나 먹을 수 있었는데, 그나마 돼지고기는 탈이 난다는 이유로 여름에는 먹지 않았다. 잔칫날이 아니면 쇠고기는 장에 나가 사 와야만 맛을 볼 수 있었으니 마당에 풀어놓은 닭이야말로 한두 마리 잡으면 온 가족이 포식할 수 있는 소중한 가축이었던 것이다. 머윗대 닭 깻국은 삼계탕이나 닭백숙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도 할머니는 매해 여름이면 기꺼이 만들어주셨고, 우리 남매들은 고소한 깻국에 아삭한 머윗대와 쫄깃한 닭고기가 어우러진 이 음식을 먹어야 더위가 사라진다고 믿었다.
머윗대 닭 깻국을 만들려면 우선 참깨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참깨를 물에 불려 손으로 살살 비비면 껍질은 물 위로 떠오르고 뽀얗고 통통한 알갱이만 바닥에 가라앉는다. 이 알갱이를 건져서 곱게 간 것이 바로 깻국이다. 들깨로 깻국을 만드는 사람도 많던데 우리 할머니는 반드시 참깨를 이용하셨다. 머윗대 닭 깻국은 기름을 거둔 닭 국물에 깻국을 섞고, 텃밭에서 자란 머윗대를 데쳐 넣은 다음 따로 찢어놓은 닭고기를 고명으로 얹거나 함께 넣고 끓였다. 닭고기를 고명으로 얹는 날에는 아버지와 오빠들의 국에는 다리 살 위주의 닭고기가 소복하게, 나와 여동생 국에는 가슴살이 약간 올라갔고, 할머니는 머윗대만 동동 뜬 국물을 드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세시 풍속 사전을 보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임자수탕 荏子水湯(영계를 곤 국물에 깻국을 섞고 미나리, 오이 등을 살짝 데쳐 넣은 국)을 먹었다고 전해지는데, 할머니의 머윗대 닭 깻국이 임자수탕의 변형은 아니었을까.
머윗대 닭 깻국이 여름 보양식이었다면 가지찜은 반드시 가지 철에만, 그것도 아버지 손님이 오시거나 서울로 유학 간 오빠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내려올 때나 먹는 특별식이었다. 어릴 적에는 밖에서 뛰어놀다 입이 심심하면 텃밭에 대롱대롱 열린 오이나 가지를 뚝뚝 따서 생으로 먹기도 했다. 보랏빛이 진해져 쪽빛에 가깝게 익은 가지를 한입 베어 물면 약간 아린 맛이 느껴지면서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났다. 가지는 보통 나물로 많이 먹었는데 밥을 뜸들일 때 알맞게 썰어 쌀 위에 얹어 찐 다음 양념장에 무치는 손쉬운 음식이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날에만 식탁에 오르던 음식이 할머니표 가지찜이다. 이 가지찜을 만들려면 우선 가지를 세로로 3등분한 다음 짚불이나 화로에 숯을 피워 석쇠에 고루 굽는다. 그리고 쇠고기와 갖은 양념, 으깬 두부로 소를 만들어 가지 사이에 넣고 소가 빠지지 않도록 묶은 다음 양념장에 조리면 완성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문득문득 가지찜이 먹고 싶었지만, 더운 여름 불 앞에서 가지를 구워야 하고, 고기를 다지는 등 손이 많이 가는 조리법 때문에 여간해서는 엄두를 못 냈다. 그렇게 추억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할머니 나이가 된 요즘에는 어디서 용기가 생겼는지 기억을 더듬어가며 가끔씩 만들곤 한다. 그리고 손자들이 놀러 오면 밥상에 올리는데 녀석들은 할미 마음도 모르고 “가지찜보다는 갈비찜이 훨씬 맛있다”며 갈비찜 없는 밥상을 서운해한다. 국물이 너무 빨갛다거나 고기소가 적게 들어갔다고 타박하면서도 결국은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녀석들을 보면 내 할머니가 그리워진다. 우리 할머니도 손자 손녀들 입에 가지찜 들어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면서 더위를 잊었겠지, 하면서.

(위) 오숙자 씨는 광주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결혼 후 다시 광주로 내려가 30년 넘게 살고 있는 광주 토박이다. 일찍 여읜 어머니를 대신해 할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은 그는 지역 박물관과 대학교에서 전통 음식을 강의하며 가끔 머윗대 닭 깻국와 가지찜을 재현하곤 한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전국 각 지역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할 예정입니다.

머윗대 닭 깻국과 가지찜 만들기


머윗대 닭 깻국
재료 생닭(800g~1kg) 1마리, 머윗대 500g, 참깨 2컵, 멥쌀 적당량, 잣 1/2컵, 대파 2대, 생강 2톨, 마늘 6쪽 닭고기 양념 간장 1큰술, 소금·생강즙 2큰술씩, 다진 파·다진 마늘 1큰술씩, 후춧가루 1/2큰술, 깨소금 약간 머윗대 양념 다진 마늘 2큰술, 조선간장·참기름 1큰술씩, 파 50g

만들기
1 닭 안에 있는 찌꺼기들을 말끔하게 제거하고 닭 꽁무니와 날개 끝을 잘라낸 다음 기름기를 걷어낸다. 손질한 닭에 대파, 생강, 통마늘을 넣고 푹 삶는다.
2 ①의 닭이 다 익으면 고기를 건져 한 김 식힌다. 국물은 고운 면보에 밭치고, 닭고기는 먹기 좋게 손으로 찢어서 분량의 양념으로 무친다.
3 참깨는 물에 불려 손바닥으로 비빈 다음 물 위에 떠오른 껍질은 버리고 알맹이만 건져 살짝 볶는다. ②의 국물을 절반만 덜어 믹서에 넣고 볶은 참깨와 불린 멥쌀, 잣을 넣어 곱게 간다.
4 머윗대는 끓는 물에 삶은 다음 건져서 찬물에 담근다. 물에 담근 채로 껍질을 벗긴 다음 다시 찬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다.
5 ④의 머윗대는 물기를 빼고 6~7cm 길이로 잘라 볼에 담은 다음 분량의 머윗대 양념을 넣어 무친 후 팬에 살짝 볶는다.
6 남은 닭 국물을 냄비에 넣고 한소끔 끓어오르면 ⑤의 머윗대를 넣고 중간 불에서 끓인다. 머윗대에 닭 국물이 배면 ③의 깻국과 ②의 닭고기를 넣어 한소끔 끓여 그릇에 담아낸다.



가지찜
재료
가지 400g, 쇠고기 우둔살 100g, 두부 20g, 소금·식용유·밀가루·명주실 약간씩 고기 양념 간장·다진 파·다진 마늘·참기름 2큰술씩, 후춧가루 1/2큰술 조림 양념장 깨소금·고추장·고춧가루 2큰술씩, 육수 5큰술

만들기
1 가지는 열십자 혹은 길게 편으로 3등분하여 칼집을 낸다.
2 ①의 가지 속 부분에 소금을 살짝 뿌려 10분간 두었다가 기름솔로 식용유를 골고루 바른다.
3 석쇠에 가지를 올리고 가장 약한 불에서 이리저리 굴려가며 고루 굽는다(가지 안쪽도 모두 굽는다).
4 쇠고기는 살만 곱게 다진 후 두부와 고기 양념장을 넣어 무친다.
5 ③의 구운 가지에 밀가루를 살짝 뿌린 후 ④의 소를 넣는다. 소가 비어져나오지 않게 명주실로 가지를 묶는다(가지를 길게 채 썰어 묶거나 길게 채 썬 가지를 말린 것으로 묶으면 더욱 좋다).
6 분량의 재료를 고루 섞어 조림 양념장을 만든다. 찜 그릇에 ⑤의 가지를 넣은 다음 양념장을 끼얹어 소가 익을 때까지 약한 불에서 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