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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되 품격이 있는 선비의 집 본문

&& LUXUTE &&/향기가득한집꾸미기

소박하되 품격이 있는 선비의 집

dhgfykl; 2010. 1. 29. 18:55

소박하되 품격이 있는 선비의 집
울창한 대숲을 뒷마당 삼은 터에 자리한 석가헌. 외양으로 보면 그저 평범한 시골집에 불과하지만 이 집은 평생을 두고 학문을 닦아온 한학자의 서당이자 진주 일대 식자들이 모여드는 살롱이다. 집안에 내려오는 학문을 지키며 멀리서 찾아오는 벗과 함께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집, 외양은 소박하되 품격이 전해지는 선비의 집, 바로 석가헌이다.


1 그의 작은 공부방.
2 오여 김창욱 선생은 고등학생 때까지 학교와 서당을 함께 다녔다고 한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한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진주시 수곡면의 시골 동네에 자리 잡은 이 집의 이름은 석가헌 夕佳軒이다. 여러 가지 뜻이 연상되는 묘한 이름이다. 이름에 중층적인 의미가 숨어 있을수록 작명을 잘한 것이다. ‘석가(부처)가 사는 집’이란 뜻도 생각나고, ‘저녁이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도 숨어 있는 것 같다. 집주인 이야기로는 저녁 ‘석 夕’이 인생의 후반부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인생 후반부를 생각하며 이 집에 들어온 것이다. 사람이 흉하지 않게 늙어가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욕망을 줄인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인가! 욕망을 줄이려면 삶이 간소해야 한다. 군더더기를 다 털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너무 간소함을 추구하다 보면 궁색하게 보일 수도 있다. 궁색은 자칫 속됨으로 갈 수 있다. 이 또한 바라는 삶이 아니다. 소박하면서도 궁색하지 않고 품격이 느껴지는 집. 이 집 주인인 오여 吾如 김창욱 선생이 품은 인생관이다.


1 4년 전, 그는 10년 동안 비어 있던 집을 손질해서 석가헌을 마련했다.


2 , 3, 4 작고 소박한 다실이지만 품격 있는 다구들을 통해 주인의 안목을 엿볼 수 있다.

석가헌의 외양은 평범한 시골집이다. 이 집은 오랫동안 비어 있던 헌 집이었다. 오여 선생이 5년 전에 들어와 내부를 고쳤다. 본채가 있고, 찾아오는 손님이 머무를 수 있도록 방이 하나 있는 사랑채가 있다. 그는 원래 음악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한학을 공부하며 진주 일대에서 사람들에게 한학을 가르치고 있다. 석가헌은 동양 고전을 공부하는 서당이자, 이 일대의 식자층이 찾아와 차 한잔하며 한담을 나누는 살롱이다. 내가 보기에 살롱이 되려면 다실 茶室이 있어야 한다. 다실은 한가함과 여유 그리고 품격을 나타내는 공간이다. 석가헌에는 4평 정도 되는 공간에 다실을 설치했다. 마당이 보이는 유리창이 있고, 그 창문 위에는 엉성한 글씨체로 ‘다도무문 茶道無門’이라고 쓰여 있다. 한국 차계의 원로였던 고 효당 선생의 친필이라고 한다. 차탁 위에는 정갈한 차구들이 정렬되어 있다. 다호와 찻잔 그리고 검은색 무쇠 주전자도 있다. 찻물을 끓이는 주전자다. 전기 화로에 올려놓은 무쇠 주전자에서 김이 올라오는 소리가 듣기 좋다. 마음이 한가해야 그 물 끓는 소리가 정겹게 느껴진다. 자기 마음이 바쁘고 부대끼는 상황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어오지 않는다. 차를 보관하는 차통도 예쁘다. 주석 성분으로 만든 회색 차통, 나무에다 옻칠해서 만든 차통, 은으로 된 차통, 어떤 일제 차통은 일본의 장인이 만든 작품이다. 이 ‘차이래’는 일본에서도 고가로 치는 물건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것을 극약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일본에 들어가서 차를 보관하는 용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차통은 가볍게 만들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가의 차이래는 물물 교환을 통해 가난한 선비의 집 석가헌에 오게 되었다. 오여 선생이 일본 장인에게 한시를 써주고 대신 선물로 받은 것이다. 다호와 찻잔, 다완을 보관하는 가구도 크지 않고 소박하다. 고재를 사용해서 만든 이 다장 茶欌은 손때가 묻어 있다. 그 안에 가지런하게 다구가 정돈되어 있다. 찾아온 손님이 좌정을 하면 주인이 무쇠 주전자에 물을 부어 끓이기 시작한다. 옹기 항아리에서 묵혀놓은 차를 꺼내 다호에 담는다. 묵은 찻잎 같으면 손으로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본다. 그리고 차를 우린다. 찻잔에 차를 따르면 그 색깔도 보기 좋다. 코와 혀와 촉감 그리고 눈으로 색깔까지 즐긴다. 차는 오감을 모두 자극하는데 이 과정에서 릴랙스가 이루어진다. 말 없는 가운데 긴장이 이완되고, 머리가 맑아진다. 대략 한 시간이 지나면 머리에 있던 기운이 아래로 내려간다. 넓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공간이지만, 이 ‘다도무문’ 다실에는 오래된 편안함이 있다. 낯선 편안함이 아니다. 그 편안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주인에게 스며 있는 서권기 書卷氣와 묵향 墨香 때문이 아니겠는가. 다실 한쪽에는 두 폭짜리 병풍이 있다. 그 병풍에는 집주인이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가 있는데, 그 앞의 두 구절이 필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석가헌에 이사 오면서 집주인이 자신의 심정을 읊은 시다.




5 오여 선생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효당 선생에게 차를 배웠다. 차경 위로 걸린 ‘다도무문’은 1977년에 효당 선생이 써주셨다.
6 우아한 자태의 백봉오골계. 원래 오골계는 검은 색이지만 흰 봉황을 닮았다 하여 백봉이라 부른다. 이 귀한 토종닭은 석가헌을 찾는 지인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태식천하지음소 太息天下知音少 부장상신백수래 扶杖傷身白水來.” 풀이하자면 ‘누가 있어 더불어 한생을 속삭일까, 지친 몸 지팡이에 얹어 빈손으로 돌아왔네.’ 세상을 둘러보아도 속마음을 나눌 사람이 적구나. 부질없이 사바세계에서 이것저것 한다고 바삐 살다가 몸만 상하고, 그렇다고 돈을 챙기지도 못하고 백수로 돌아왔다는 심정이다. 결국 백수로 돌아오고 말 것을 뭐 그리 바쁘게 마음 졸이고 살았단 말인가!
석가헌이 있는 수곡면 대천리 大泉里는 지명에서 보이는 것처럼 샘물이 좋다. 동네 뒤에 ‘한천 寒泉’이라는 샘이 있다. 물이 좋은 동네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차도 석가헌에서 마시면 맛이 더 우러난다. 이 집의 물은 집 뒤의 대숲에서 내려온 물이다. 대나무 뿌리는 물을 걸러준다. 그래서 대숲이 있으면 물맛이 좋다. 석가헌 뒤 대숲은 일품이다. 대나무는 눈밭에서도 푸르다. 그래서 겨울에도 즐길 수 있는 숲이다. 대숲은 그늘이 진다. 그 그늘이 여름에도 그윽한 느낌을 준다. 동양의 식자층들이 즐겨 썼던 ‘유현 幽玄’이라는 단어는 대숲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숲에서 유현함이 나온다. ‘죽림칠현’도 대숲에서 나왔다. ‘유현’은 그윽하다. 너무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다. 여기에 묘미가 있다. 너무 자기를 드러내도 안 되고, 그렇다고 감추기만 해도 안 된다. 너무 감추면 상대방을 긴장시킨다. 포커페이스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빛이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는 대숲에 있을 때 사람은 편안해진다. 이 조도 照度에서 사람은 중용의 덕을 갖춘다. 조도가 그만큼 인품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관점이다. 너무 밝으면 긴장하고 너무 어두우면 침울해진다. 그러니까 집 뒤에 대숲이 있으면 반절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집주인이 여기에 이사 오게 된 이유가 바로 이 대숲 때문이었다.


1 다실을 장식하는 병풍은 오여 선생의 한시를 진주의 한 서예가가 써준 것이고, 부채 그림은 아버님의 제자 세 사람이 각각 글씨, 매화, 선유도를 더해 아버님께 선물한 것이다.
2 석가헌을 마련하면서 덤으로 따라온 대숲의 정취가 그만이라며 그는 객에게 대숲 산책을 권했다.


지난해 매화가 핀 봄날, 그것도 보름달이 환하게 창문 앞의 매화를 비춰주는 날이었다. 보이차의 대가 경원 스님과 오여 선생 그리고 나. 유불선 삼교가 모였다. 이렇게 세 사람이 석가헌 다실에 앉아 있었다. 밤 10시 무렵이 되니까 보름달이 창문 너머로 꽉 차 있었다. 매화 향이 코끝으로 전해지고, 달빛은 세 사람을 비추고, 무쇠 주전자에서는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물이 끓고 있었다. 세 사람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풍류는 한없이 가슴에 와 닿았다. 경원 스님이 비장하고 있던 ‘무지홍인’ 차를 가져와서 차호에 털어 넣었다. 일주일 먹을 분량을 그날 다 털었다. 무지홍인을 덥석 받은 오여 선생이 왠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좋은 차를 수중에 확보하면 입가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각자 자기가 세상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여 선생은 신장 수술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 경원 스님은 젊어서 동해안에 배 타러 나갔다가 태풍을 만나 죽을 뻔한 이야기, 나는 칼럼 쓰면서 겪은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새벽에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에 일어나 함께 대밭을 걸었다. 대밭을 지나면 자그마한 동산이 나온다.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뒷동산이다. 여기까지 쉬엄쉬엄 갔다 오니 40~50분 정도 걸렸다. 왜 그렇게 만족감이 들던지!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정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석가헌엔 손님들이 가져온 물건이 많다. 마당에 왔다 갔다 하는 흰 닭도 손님이 준 것이다. 이름 하여 백봉오골계 白鳳烏骨鷄다. 재래종 닭으로 족보 있는 닭이다. 오골계는 원래 검은색이지만 이 닭은 흰색이다. 흰 봉황 같다고 해서 ‘백봉’이다. 색깔은 흰데 골격은 오골계인 것이다. 선비 집에는 닭이 있어야 한다. 아침에 닭이 운다. 새벽에 닭 우는 소리를 듣는 것도 풍류다. 닭 울음소리에는 기운이 있다. 벽사의 기능도 있다. 서산 대사는 대낮에 초가지붕에 올라가서 닭 울음소리를 듣고 도를 깨쳤다고 전해진다. 특히 흰색은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다. 옛사람들은 터가 세면 흰 닭을 키우기도 했다. 마당 한쪽에는 조그만 밭이 있다. 상추도 키우고, 시금치도 키우고, 고추도 키운다. 가을에는 붉은 고추가 마당에 열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주인은 이 텃밭에 물을 주는 것이 취미다. 손님이 왔을 때는 마당의 상추를 따다가 쌈을 싸 먹는다.
오여 선생은 유년 시절부터 한학을 익혔다. 집안에 경상도의 큰 학자라고 불리는 어른이 계셨기 때문이다. 유학적 가풍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익혔다. 유년 시절부터 몸으로 익힌 유학과 대학에 들어가서 배우는 학문과는 다르다. 그는 조선의 고풍 古風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 고풍 중의 하나가 ‘호설의 號說儀’라는 의례다. 호를 지어주고 그 호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의례다. 이전에 나는 이러한 호설의라는 의례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오여 선생을 만났다. 진주의 찻집인 무현금에서 진행된 호설의를 참관하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그는 한시에도 능하다. 요즘 오여 선생처럼 한시를 자유자재로 지을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고풍 을 간직한 사람이다. 외국에 가서 허겁지겁 배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서울에 가지 않고, 고향에 남아 있는 삶이 그립다. 집안에 내려오는 가학 家學을 지키며 고향 집의 대숲을 거닐고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들과 맛있는 차를 한잔 나눌 수 있는 집이 바로 진주의 석가헌이다. 소박하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선비의 집이다. 

3 다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향이다. 오여 선생은 귀한 손님이 오셨다며 침향을 피워주었다. 침향나무에서 나오는 침향은 향 중에 으뜸으로 친다.

청운 靑雲 조용헌 趙龍憲 선생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조용헌 선생은 ‘백가기행’을 통해 가내구원 家內救援을 이야기합니다. 위로와 휴식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년간 <행복>과 함께 각양각색의 집을 돌아보며, 그가 찾아낸 가내구원의 공간은 다실, 구들장, 중정이라 합니다. 그중에서도 현대인이 꼭 갖추어야 할 공간으로 ‘다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5백 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고수 기행>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 지난해 가을 출간한 <조용헌의 명문가>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