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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기다림과 여행하는 것이다♡

The Best of~~조용필 본문

음악,영화/@뮤지션·국내

The Best of~~조용필

dhgfykl; 2009. 1. 28. 23:52

 
 

 



Best.님이여[70년대 원곡]/조용필


Best.내 가슴에 내리는 비/조용필


Best.내이름은구름이여/조용필


Best.물망초/조용필
 



1.상처/조용필


2.들꽃/조용필


3.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조용필


4.돌아오지 않는 강/조용필


Best.잊혀진 사랑/조용필
 



5.그겨울의찻집/조용필


6.창밖의 여자/조용필


7.가지말라고/조용필


8.바람이전하는말/조용필


9.비련/조용필


10.미워미워미워/조용필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1.촛불/조용필


12.어제 오늘 그리고/조용필


13.기다리는아픔/조용필


15.허공/조용필
 

조용필의 40년, 전국민의 오빠였던 사나이

★...[이데일리 SPN 유숙기자] 1980년대 중반 브라운관 앞에 앉아있던 한 꼬마아이는 TV 속에서 노래하는 조용필을 보고 객석에서 환호하던 언니들을 따라 “용필오빠”를 부르며 조용필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조용필은 전국민에게 ‘조용필’이기보다 ‘오빠’였다. ‘원조’라는 말이 너무 흔해진 요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원조 오빠이자 가왕(歌王) 조용필이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조용필은 1968년 록그룹 애트킨즈를 결성했고 미8군 무대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파이브 핑거스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했던 조용필은 1971년 3인조 그룹 김트리오를 결성, 선데이 서울컵 팝그룹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그해 ‘사랑의 자장가, 님이여’를 타이틀로 첫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그룹 생활을 해오던 조용필은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포함된 앨범을 발표, 타이틀곡은 아니었지만 이 곡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조용필의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리는데 한 몫을 했다. 특히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부산을 시작으로 인기를 얻었고 재일동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조용필은 이듬해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활동이 금지됐다.

가수 활동을 하지 못했던 시간, 그는 판소리를 연습해 한국민의 정서인 한(恨)을 목소리에 싣기 시작했고 활동 정지가 풀린 후 1980년 3월 1집 ‘창밖의 여자’로 방송사 가요 시상식을 휩쓸고 국내 가수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갖는 등 성공적으로 재기했다. 또 그해 말에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을 결성하기도 했다.

1981년에도 조용필은 3집 ‘고추잠자리’와 1982년 4집 ‘못찾겠다 꾀꼬리’로 연속 히트를 시키며 ‘국민 가수’로 거듭났다. 특히 1982년 일본 문화방송 30주년 기념 공연, 미국 11개 도시 순회공연과 1983년 일본 NHK 후원 일본 15개 도시 순회공연 등으로 이어지며 이때부터 해외에서의 공연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라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동방신기의 인기도 조용필의 끊임없는 그리고 폭발적인 인기에는 비할 것이 못됐다. 조용필은 5집 ‘나는 너 좋아’(1983), 6집 ‘눈물의 파티’(1984), 7집 ‘미지의 세계’(1985), 8집 ‘허공’(1985), 9집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1987)까지 꾸준히 사랑을 받았다.



★...그 결과 조용필은 1980년부터 1986년까지 MBC 10대 가수 가요제의 ‘가수왕상’을 연속 수상했다. 물론 조용필의 가수왕 ‘독식’은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조용필은 1987년 “후배들을 위해 더 이상 상을 받지 않겠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한편 그의 인기는 재일동포들을 따라 일본으로까지 건너가 조용필은 1987년 일본 NHK 연말 가요 프로그램 가요 홍백전에 외국인 최초로 무대에 올랐고 이후에도 1992년까지 총 5회(1991년 제외)를 출연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 발표된 조용필 10집 파트1의 ‘서울 서울 서울’은 올림픽을 맞아 전국민의 애창곡이 됐고 조용필은 그해 8월 한국 가수 최초로 중국 북경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용필은 방송보다는 공연 위주로 활동을 해왔다. ‘가수가 있어야 할 곳은 무대’라고 늘 말해왔듯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 해외 팬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쉼 없이 공연을 펼쳐왔다. 또 대중가수들에게 벽이 높은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는 1999년 최초로 조용필에게 문을 열었고 2005년까지 매년 조용필은 이곳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2003년에는 데부 35주년을 기념해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어 이제는 아줌마들이 된 원조 오빠부대들을 다시 한번 불러 모았다.

또한 조용필의 노래 ‘친구여’와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앞서 거론된 곡들 외에도 ‘단발머리’, ‘비련’,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히트곡을 불러온 조용필은 국내 가수 최초로 음반판매량 1000만장을 넘긴 기록도 갖고 있다.

한편 조용필은 오는 5월 24일 서울 잠실 주경기장 공연을 시작으로 진행되는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 ‘더 히스토리-나의 노래’는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18~19개 도시와 해외 공연으로 이어지게 된다.
조용필은 이번 공연을 위해 야외 공연장에 70~8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약 35층 높이의 무대를 짓고 3D 영상을 위한 스크린도 준비할 계획이다.

무대와 음악에 대한 조용필의 ‘욕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조용필은 올해 공연인들이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실제와 같은 조명과 음향 등이 설비된 ‘YPC종합예술연구소’를 착공하고 19집 앨범도 발표할 예정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대중가요, 공연문화를 살찌우게 하는 조용필의 욕심은 계속 되어야만 한다


16.일편단심 민들레야/조용필


17.슬픈 베아트리체/조용필


18.무정부르스/조용필


19.킬리만자로의표범


20.한오백년/조용필
 



21.여인/조용필


23.대전부르스/조용필


24.보고싶은여인아/조용필


25.강원도아리랑/조용필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6.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27.간양록/조용필


28.위에 곡들 연속듣기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조용필 스테레오힛트앨범 : 꿈을 꾸리 (1972)
 
 
님이여 : 님이여 / 어디로 갔나요 (1976)
 
조용필 / 영사운드 : split album - 趙容弼 (1976, SRB)
 
趙容弼 : 잊을 수 없어 / 그 사람은 어디에 (1980)
 
1집 - 趙容弼 대표곡 모음 : 창밖의 여자 / 단발머리 (1980)
 
 
1980년대의 대중음악계에서 조용필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를테면 물고기에서 아가미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제주도에서 한라산이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없으면 그것이 아니게 되는 바로 그것. 조용필이 80년대 한국 대중음악에서 갖고 있는 ‘존재 지분’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조용필은 모두에게 사랑받았다(이 때 ‘모두’란 단지 수사법이 아니다).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를 드러내놓고 미워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가수’였고, 컬러TV 시대 최초의 슈퍼스타였으며, 약 10년 동안을 도전자 없는 왕좌에 앉아 있었다. 그 조용필 신화의 시작이 바로 이 음반이다. 이 음반이 만든 수많은 기록들에 대해 다시 언급하는 것은 지면 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 음반이 조용필의 음악적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의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언급하는 것으로 족하고자 한다.

외적인 흥행 기록을 떠나 조용필의 이 음반은, 음악적인 측면과 전략적(상업적)인 측면에서 조용필이 나아가게 될(그리고 실제로 나아간) 방향을 완성된 형태로 제시한 음반이다. 우선 음악적인 측면.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 음반은 조용필 ‘최초의’ 음반이 아니다. 그는 72년부터 다수의 음반을 내고 활동을 했으며, 76년에 발표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기록한 뜻밖의 히트로 인해 영광과 몰락의 시기를 겪은 바 있다. 80년대에 ‘부활’하기 전까지 그는 포크 송, 그룹사운드 록, 트로트, 민요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적 배경을 이미 쌓아두었고, 이는 이 음반에서 조용필의 독특한 목소리와 함께 종합적 형태로 모인다. 즉 이 음반에는 애절한 발라드(‘창밖의 여자’), 경쾌한 록(‘너무 짧아요’), 트로트(‘돌아와요 부산항에’), 민요(‘한오백년’)가 고루 들어가 있다. 거기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뿅뿅거리는 디스코(‘단발머리’)까지, 조용필은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패를 올려놓는다.

다음으로 전략적 측면. 이는 음악적 측면에서 파생된 것으로, 조용필 음반의 ‘백화점식 구성’은 결과적으로 연령과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는 계기가 될 수 있었(고 그것이 먹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근거로 조용필에게 ‘아티스트로서의 일관성’이 부족했다고 비판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그 비판은 당시의 음악산업 시스템 속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부분과 할 수 없었던 부분을 적절히 고려하고 난 뒤에 가능할 것이다. 다른 종류의 음악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대중음악은 특히 자신이 속한 바로 그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용필의 이 음반은 80년대 대중음악의 가장 환하게 빛나는 산물 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면 그때 그 시절이 너무 어두웠거나.

PS. 이 음반에 대한 글은 당시 발매되었던 LP를 기준으로 작성했음을 밝힌다. LP와 CD에 실린 곡의 목록에는 차이가 없지만 순서가 일부 바뀌었으며(예를 들어 ‘단발머리’는 LP의 B면 첫 곡이다. LP로 들을 때는 이러한 곡 배치가 A면 첫 곡인 ‘창밖의 여자’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게 된다) LP에는 건전가요(군가 ‘너와 나’)가 수록되어 있다.
 
 
2집 - 趙容弼 Vol.2 : 축복(촛불) / 외로워 마세요 (1980)
 
 
3집 - 趙容弼 제3집 : 미워 미워 미워 / 여와 남 (1981)
 
 
4집 - 조용필 : 못찾겠다 꾀꼬리 / 비련 (1982)
 
 
5집 - 조용필 5 : 산유화 / 여자의 정 / 한강 (1983)
 
 
6집 - 조용필 6집 : 바람과 갈대 / 그대눈물이 마를때 (1984)
 
 
7집 - 趙容弼 7集 : 눈물로 보이는 그대 / 들꽃 (1985)
 
 
ㆍ국민가수, 본격적 록을 노래하다

조용필이 한국 현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뮤지션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조용필 이전에도 대중가요 스타들이 있었지만 그처럼 세대를 막론한 사랑을 받으며 한 시기를 완벽하게 지배한 주류 대중음악 스타는 없었다. 물론 그의 이런 폭발적 인기는 온전히 개인적 뛰어남에 연유한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조용필이라는 거대한 태풍의 배경에는 컬러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상징되는 대중매체의 폭발적 확산과 박정희 체제에 비해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개방적이었던 전두환 체제가 존재했다. 60년대 후반 대중음악계에 뛰어들어 10여년 만에 정상의 자리에 섰던 조용필은 어떤 점에서 ‘라디오 스타’의 완성본인 동시에 ‘비디오 스타’의 출발점이라 할 만하다.

다만 평론의 영역에서 조용필은 인기 좋은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일 것이다. 평론가들의 관심을 끌기엔 존재감이 너무 크다는 것이 그 한 가지이며 의외로 그가 만든 앨범들이 비평적 관점에서 그가 성취했던, 혹은 성취했다고 여겨지는 음악적 수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앨범의 수준이 창작자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되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80년대, 아니 그 이후 한국가요계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뮤지션에게 살인적 스케줄을 요구하며 매해 한 장 이상의 앨범을 생산해야 했던 시스템에서 조용필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 7집은 전성기 앨범 중에서는 흔치 않게 그의 음악적 집중력이 고도로 발휘됐다. 단적으로 전작인 6집에 자작곡이 단 한 곡에 머물렀던 것에 비해 11곡의 수록곡 중 7곡을 직접 만들었다. 무엇보다 6집까지 조심스럽게 실험했던 록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30대 중반의 성공적인 대중스타가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음악적 혁신을 시도한 셈인데 결과적으로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에서 일정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주류의 대중스타 조용필이 록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까닭은 그의 음악적 이력이 록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앨범이 발표된 80년대 중반이 팝 시장에서 주류로 편입된 록음악이 비상했던 시기라는 점이다. 다분히 뉴웨이브의 영향이 감지되는 ‘어제, 오늘, 그리고’나 ‘조용필식’ 하드록의 절창을 보여주는 ‘미지의 세계’ ‘여행을 떠나요’ ‘그대여’ 등은 록이면서도 대중적 감수성이 묻어나는, 한국적 메인스트림 록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해 발표된 들국화의 전설적 데뷔앨범과 더불어 록이 본격적으로 한국 가요계에 토착화되는 과정을 증명하고 있는 것.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지만 미들템포의 ‘나의 노래’는 음악적 테크닉의 진일보를 보여주고 있고 고(故) 유재하가 만든 시대를 앞서간 팝발라드 ‘사랑하기 때문에’가 먼저 실려 있는 점도 이채롭다.

그런데 같은 해 가을 발표된 8집에서 그는 록 뮤지션으로서의 진전을 보여주는 대신 폭넓은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가수로 돌아가 버린다. 그것이 놀라운 상업적 전략이었을까, 시대적 한계였을까? 가왕만이 아실 것이다.
 
8집 - 趙容弼 Vol.8 : 허공 / 킬리만자로의 표범 (1985)
 
 
 
9집 - '87 사랑과 인생과 나! : 마도요 /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1987)
 
 
10집 - 조용필 제10집 Part. I : Seoul Seoul Seoul / 서울 1987년 (1988)
 
 
11집 - 조용필 제10집 Part. II : Q / 눈이 오면 그대가 보고싶다 (1989)
 
 
12집 - '90-Vol.1 Sailing Sound : 추억속의 재회 /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1990)
 
 
13집 - 'The Dreams : 꿈 / 아이마미 (1991)
 
 
14집 - Cho Yong Pil 14 : 슬픈 베아트리체 / 흔적의 의미 (1992)
 
 
15집 - Cho Yong Pil 15 : 남겨진 자의 고독 / 끝없는 날개짓 하늘로 (1994)
 
 
16집 - Eternally Cho Yong Pil 16 : 그리움의 불꽃 / 바람의 노래 (1997)
 
 
17집 - Ambition : 친구의 아침 / 작은 천국 (1998)
 
 
컴필레이션 - 30Th Anniversary Greatest Hits Part 1 : 허공 / 킬리만자로의 표범 (1998)
 
 
컴필레이션 - 30Th Anniversary Greatest Hits Part 2 : 창밖의 여자 / 고추잠자리 (1999)
 
 
컴필레이션 - 30Th Anniversary Greatest Hits Part III : 그 겨울의 찻집 / 추억속의 재회 (2000)
조용필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했던 곡인 <그 겨울의 찻집>을 첫곡으로 <서울,서울,서울>,<그대 향기는 흩날리고>,<사랑해요>등 주옥같은 명곡들 수록!!!
 
 
2002 飛上 콘서트 : 흔적의 의미 / 단발머리 [live] (2002)
 
- 가요계의 살아있는 신화 조용필의 최고의 공연 - DVD로 평생 간직한다!
- 국내 영화, 공연물 최초의 첨단 DTS-ES, 돌비 5.1EX 사운드 !
- 88서울 올림픽 이후 최대의 카메라 동원 촬영(35대)
- 국민 가수 조용필의 최고의 콘서트 - DVD 제작을 염두해둔 기획과 제작!
- 2002년 5월 5일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조용필 『飛上』콘서트 실황 전격 수록!
- 멀티 앵글 수록 및 다양한 부가영상 수록!
- 매니아 소장용 고품질 DVD Title로 제작!
 
 
컴필레이션 - 熱唱 : 창밖의 여자 /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2002)
 
컴필레이션 - Greatest Hits Collection / 조용필의 음악인생 35年을 회상하며 (2003)
 
18집 - Over The Rainbow : 珍 / 태양의 눈 (2003)
 
1997년 발매된 17집 ‘친구의 아침’ 이후 5년 만에 발매되는 18집 - Over The Rainbow

35주년 기념 대형 콘서트와 맞물려 발매되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은 Over the rainbow」이다. 폭우가 지나간 후에 뜨는 무지개가 더 선명하고 아름답듯이 조용필도 오랜 고난과 시련을 딛고 무지개처럼 아니, 무지개를 넘어서 또 다른 도전과 희망의 세계를 찾아 나서려 한다.
물론 음악을 통해서 그 꿈은 전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조용필의 현실을 미루어 보아
「Over the rainbow」는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현세에서 다 이루지 못한 애틋한 사랑을 다른 세계에서 이어가길 원하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의미들이 그의 노래에 젖어, 18집 앨범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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