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 (혹은 밴드)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난 산울림을 뽑겠다.
그만큼 내가 느끼기에 그들의 음악은 혁명 그 자체다.
그 당시에 외국에 비하면 열악하디 열악한 환경에서
그런 음악을 했다는건 정말 이들의 천재성을 돋보이게 하는 게 아닐까.
외국의 어느 노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꽉짜인 멜로디와 연주는
듣는 이에게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적어도 난 그랬다.)
좀더 음악을 했더라면 어땠을지...
그러나 Beatles가 전설이 된건 그들이 적절한 시기에 해체했기때문이 아닐까...
이름: 산울림
맴버: 김창완(보컬,기타), 김창훈(세컨드기타,베이스,건반), 김창익(드럼)
수상: 1978년 TBC 가요대상(중창부문)
1981년 KBS 가요대상(중창부문)
앨범: 1집(77. 10. 1) : 아니벌써/불꽃놀이/문좀열어줘
2집(78. 5. 10) : 내마음에 주단을 깔고/어느날 피었네/나 어떡해
3집(78. 11. 1) : 내 마음/그대는 이미 나
4집(79. 4. 15) : 특급열차/우리 강산
5집(79. 9. 20) : 한낮의 모래시계/이렇게 갑자기
6집(80. 1. 10) : 조금만 기다려요/못잊어/어느 비 내리던 날
7집(81. 8. 1) : 가지마오/하얀달/청춘
8집(82. 5. 25) : 새야 날아/내게 사랑은 너무 써
9집(83. 5. 5) :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멀어져간 여자
10집(84. 6. 20) : 너의 의미/지금 나보다/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11집(86. 9. 10) :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 슬픈 장난감
12집(91. 7월) "아다지오" : 꿈꾸는 공원/불안한 행복/동창생
13집(97. 2월) : 무지개
1.청춘 / 산울림
2.내게 사랑은 너무 써 / 산울림
3.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 /산울림
4.어느 산골소녀의 사랑이야기 / 산울림
5.그대 떠나는날에 비가오는가 / 산울림
6.사랑하는사람아 / 산울림
7.내마음의 주단을 깔고 /산울림
8.빨간풍선 / 산울림
9.길을 걸었지 / 산울림
10.아니벌써 / 산울림
11.못잊어 / 산울림
12.찻잔 / 산울림
13.둘이서 / 산울림
14.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 산울림
15.한동안 뜸했었지/ 산울림
16.나 어떡해/ 산울림
17.문 좀 열어줘/ 산울림
18.귀여운 소녀/ 산울림
19.가지마오/ 산울림
20.개구장이/ 산울림
21.꼬마야 / 산울림
22.너의 의미/ 산울림
23.안녕 / 산울림
24.가을에 오시나요 / 산울림
25.독백/ 산울림
26.골목길 / 산울림
27.산할아버지 / 산울림
26.위에 곡들 연속듣기
김창완이 친동생 김창훈, 김창익과 함께 만든 그룹 '산울림'은 실제로 직업적인 락그룹이 되기 위해 앨범을 만든 건 아니다. 1972년 경에 그가 집에 500원짜리 기타를 들고와서 형제끼리 노래를 부른 것이 음악의 시작이었다. 얼마 후 김창훈이 기타를 하나 더 장만하자, 할 것이 없는 막내 김창익은 전화번호부와 노트 등을 방바닥에 놓고 드럼 흉내를 내면서 그들의 음악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1977 대학을 졸업(서울대 농대 잠사학과)하면서, 그동안 작곡을 하였던 약 150 여곡들이 아까워서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기분으로 그들은 한 장의 앨범을 내기로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레코드 회사에서 녹음을 허락했고, 녹음날 취직시험이 있던 그는 과감히 녹음을 하기로 결정하고 녹음한 것이 바로 '산울림'의 탄생이었다. rock이 그다지 대중화되지 못한 70년경에 '산울림'의 "아니벌써"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국내 가요계를 흔들어 놓았고, rock의 대중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1집의 '산울림'은 다시 한번 앨범을 낼 기회를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2집 "내마음의 주단을 깔고"이고, 이 앨범은 '산울림'을 국내가요계의 앞서가는 그룹으로 완전히 자리 굳히게 한다.
1979년 창훈과 창익의 군입대로 인한 공백기를 거쳐 1981년 7집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이 무렵에는 "산할아버지" "개구쟁이"등 어린이를 위한 세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이 노래들은 지금도 각종 모임과 운동경기에서 단골로 불려지는 국민가요가 되었다.
1983년 산울림은 9집을 끝으로 해체했다. 두 동생은 사회인이 되었고 맏이인 그만이 산울림의 이름으로 3장의 음반을 내는 등 음악인의 길을 걸었다. 80년대 중반 이후로는 신인들을 모아 '꾸러기들'을 결성하여 최성수, 임지훈, 윤설하, 현희, 신정숙 등을 길러냈다. "꼬마야" "고등어" 등 히트곡도 냈다. 그의 음악은 20년이 흐른 지금도 산울림의 연장선상이다.
'산울림'의 78년 서울 문화체육관에서 열렸던 첫 공연은 새벽부터 장사진을 치는 소동을 벌였고, 관객들이 던진 꽃으로 무대가 뒤덮이는 소동을 벌이는 등 많이 화제를 낳았다. 자유분방하고, 실험적인 음악정신에 젊은이들의 열광이 따랐다. 77년생 아이는 '산울림동이'로 불렸을 정도이니 인기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83년 활동을 중단한 이후 14년만에 본격 활동을 선언하고 나섰다. 삼형제 록그룹 '산울림'의 복귀는 신선함과 충격 이상이다. 산울림은 90년대의 록 평론가들에 의해 신중현과 들국화와 더불어 한국록 역사의 가장 우뚝한 봉우리로 평가 받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문제적 데뷔 앨범'으로 평가받는 산울림 1집이래 '산울림'이란 이름으로 작년까지 13집이 출반 되었다. 네 개의 동요앨범, 두개의 독집도 그의 앨범목록에 올라 있으며 그의 음악은 어떤 장르에 있더라도, 상투적인 문법을 거부하는 창의성으로 빛난다.
'산울림' 음악의 전반적인 관심은 '인생'이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2집부터 지금까지 계속돼 왔다. 좀더 깊은 주제에 관해 젊은이들이 관심을 보이게 되면서 산울림 음악을 좋아아하게 되었다. 우리말 자체를 존중하고 사랑해서, 노랫말도 참신함을 지니려고 노력했다. 구어체 문장을 그대로 가사로 사용해 위트와 파라독스가 생동감 있게 표현된 노랫말은 우리 가요계의 발전에 커다란 시금석이 되었던 사건이다. 특히 산울림의 앨범 자켓은, 자켓의 1/4이 조금 넘는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이 왼쪽 중간에 있고, 그 오른쪽에는 '산울림'이라는 특이한 글씨체로 그들의 그룹명을 적어 놓았는데, 12장의 정규앨범들이 나오면서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만 바뀌었을 뿐이다. 당시 가수의 사진을 앨범 자켓에 싣는 것이 대부분인 것을 생각하면, 앨범 자켓에서도 그들은 앞서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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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박스세트 - The Story Of Sanullim: Complete Studio Recordings (2008, 로엔 엔터테인먼트)
한국 록의 전설, "산울림"의 모든 것을 담은 박스세트파격에 가까운 혁신적 창의성, 그리고 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담은 탁월한 작품들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던 형제 밴드 산울림.거친 퍼즈톤 기타와 두드러지는 베이스 라인, 흘러넘치는 전자 오르간의 무질서한 듯 보이는 조화, 그리고 기존 가수들의 음색이나 창법과 확실히 거리가 있는 김창완, 김창훈의 보컬로 특징되는 산울림의 모든 정규 스튜디오 앨범들을 담은 ‘제대로 된 박스세트’가 등장했다.거의 완벽한 복원 작업을 거친 최고 퀄리티의 미니어처 LP 형태로 제작되어 오리지널 LP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겼으며, CD 라벨 역시 오리지널 LP 라벨 형식으로 재구성했다.몇몇 앨범들에는 오리지널 수록곡 외에 데모곡, 미공개 테이크, 라이브 버전 등이 추가로 수록되어 있다.150페이지에 달하는 고급 양장 부클릿에는 여러 미공개 사진들을 포함한 산울림의 파릇한 젊은 시절의 소중한 사진들을 비롯하여 모든 수록곡들의 충실한 가사, 그리고 산울림의 음악세계를 개괄하는 라이너노트 등을 담았다. 특히 13장의 정규 앨범에 대해 박준흠, 임진모, 박은석, 성우진, 김고금평, 한현우 등 국내 최고의 음악평론가/기자 13인의 리뷰를 별도로 수록하여 산울림 음악세계를 재조명했다.CD 17장"정규 앨범 13장, 동요 앨범 4장"과 부클릿이 포함된 소장가치 높은 이 박스세트를 통해 그간 수많은 국내외의 팬들이 가지고 있던 아쉬움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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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베스트 - 다시듣기 : 청춘, 위로, 추억 (2005, 도레미)
대한민국 가요계의 산 역사 산울림의 데뷔 29주년 기념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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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13집 - 무지개 (1997, Ji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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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박스세트 - The Complete Regular Recordings In 1977-1996 / Twentieth Anniversary Limited Edition (1996, Ji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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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베스트 - 하늘색 꽃병 (1996, 삼성뮤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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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베스트 - 초록색 대문 (1996, 삼성뮤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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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12집 - 산울림 제12집 / Adagio (1991, 서울음반)
시각적 요소를 우위에 내세운 90년대 감수성의 기층소사에 소리 없이 침몰해버린 베테랑의 유현한 소품. 이 앨범은 김창완이 모든 세속적인 유혹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에게 독백을 거는, 불혹의 문지방을 밟고 선 조용한 토로이다. 선율은 아예 문전박대 당했으며 리듬도 눈에 뛸세라 숨을 죽인 이 소시민적인 앨범을 통해 김창완은 시장에서 완벽하게 버림받았지만 오떼르(Auteur!)의 월계관을 스스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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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컴필레이션 - Greatest Hits Vol.1 (1987, 서울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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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컴필레이션 - Greatest Hits Vol.2 (1987, 서울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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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컴필레이션 - Greatest Hits Vol.3 (1987, 서울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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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컴필레이션 - Greatest Hits Vol.4 (1987, 서울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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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11집 - 산울림 제11집 (1986, DAS)
프로듀서로서의 직무, TV 베스트셀러 극장의 음악 작업으로 3년만에야 선보이는 산울림의 이름. 이 앨범은 앞뒷면의 명암이 대조를 보이고 있어 흥미로운데, A면은 5집에 이어 극한적으로 내성에 파고 드는 12집 사이의 간이역이며 뒷면은 4장에 걸친 동요작업의 1차 완결판이다. "슬픈 장난감"은 비애의 정서가 세련되게 마무리된 수작이며 나중에 디스코 버전으로 나오기도 한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거야."는 어린이를 위한 댄스뮤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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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single - 귀여운 소녀의 디스코 (1986, D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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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single - 산울림 스페이스 사운드 디스코 (1986, D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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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산울림.김범룡 Disco Mix (1986, D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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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10집 - 산울림 제10집 (1984, DAS)
김정택, 이치현 등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이 앨범부터 산울림의 무게는 오직 김창완 한 개인의 어깨 위에 걸리게 되었다. 머리곡 "너의 의미"는 8집의 스타일에 슬쩍 기댄 평이한 발라드이지만 그렇다고 9집의 반성적 성찰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선율의 내면적인 아름다움과 순수한 통찰력이 빛나는 "동화의 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무려 열세곡을 담은, 김창완의 꺼지지 않는 창작열이 유감없이 증빙된 앨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모르는 것처럼, 어떻게 열번째의 산울림 앨범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저희는 모릅니다. 1977년 겨울 "아니벌써" 그후론 아무것도 알수 없읍니다. 산울림 저희는 산울림을 사랑합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당신의 기쁨이기에. 1984.6. 열번째 앨범에 손에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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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컴필레이션 - 산울림 동요왕국 (1984, 서울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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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경음악 - 산울림 록사운드 (1983, DAS)
"산울림 록 사운드" 앨범에 부쳐
지금까지 산울림이 국내 정상의 록 그룹으로 자리를 지키도록 도와주신 많은 팬들의 요청과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특별히 기획한 연주앨범을 선보이게 됐읍니다. 대학시절(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3형제로 구성된 산울림은 1977년 대학가의 선풍과 함께 출발하여 지금까지 9장의 독집 디스크와 어린이들을 위한 동요집 "개구장이", "산할아버지", "운동회" 그리고 TBC 라디오 연속극 드라마 주제가인 "빨강풍선"을 포함하여 모두 13장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히트곡을 기록했읍니다. 그들이 이렇게 발표하는 곡들마다 환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록뮤직의 확고한 바탕과 바탕과 끊임없는 샘솟는 시속인 영감과 창작정신 때문입니다. 자유롭게 구사하는 멜로디의 진행과 솔직한 인간 내면을 표현해주는 그들의 음악은 국내의 음악경향으로 보아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가히 젊은이들의 언어를 대변하는 한국의 록뮤직이라고 말할 수 있겠읍니다. 꾸밈없는 보컬과 소박하면서도 가슴에 와닿는 가사 그리고 상큼한 리듬터치 이것이 산울림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새로운 연주 앨범을 제작하면서 그들의 또다른 매력을 발견했읍니다. 그것은 노래로 듣던 것과는 달리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의 멜로디는 환상적이었으며 연주 음악으로서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읍니다. 또한 밝고 경쾌한 록엔롤의 신선 한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이 연주앨범은 산울림1집에서 9집까지의 가장 히트한 곡들만을 선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 한곡 한곡에 특별한 애정이 담겨 있으며 계절이 바뀌어도,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 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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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경음악 - 산울림 러브사운드 (1983, D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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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컴필레이션 - 산울림 사랑의 발라드 (1983, DAS)
"산울림 사랑의 발라드" 앨범에 부쳐
잊는다는 것은 곧 죽음입니다. 잊혀진다는 것은 슬픔입니다. 시간을 갈라, 길다 자랍다하면 무엇하겠어요.
잡아 볼 손이 있고 밤새 나눌 얘기가 있으면, 마냥 달이 좋고 좋을 뿐입니다.
풋풋한 노래를 모아 한울타리에 척척 걸쳐 놓았습니다.
바람이 불면 엄마치마가 펄럭펄럭 누나 댕기가 할머니 적삼이 아버지 닳고 닭은 바지가
멀리 빨랫소리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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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컴필레이션 - Rock World (1983, D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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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9집 - 산울림 제9집 (1983, DAS)
자기비판 끝에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이 앨범은 김창완 스스로가 가장 애착해하는 역작이지만 이미 달콤한 것에 길들여져 있는 대중은 이 앨범의 숨은 가치를 거절했다. 3인조 형제 밴드로서 백조의 노래이기도 한 이 앨범은 전작들에 비해서 녹음도 획기적으로 좋으며 특히 "황혼"과 같은 득의의 블루스 트랙은 절편이며 스트레이트한 "소낙비"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아티스트가 대중의 취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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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어린이에게 보내는 산울림의 동요선물 제3집 (1982, D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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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8집 - 산울림 제8집 (1982, DAS)
7집으로 멈추었으면좋았을것을. 상업적 성공을 한 발짝 더 연장시킨 이 앨범은 김창완을 러브 발라드의 히트메이커로 오인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원흉(?)은 바로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이 앨범에는 웅크리고 있는 사자의 은폐된 발톱도 보이지 않는다. 이 즈음 방송가를 장악하기 시작한 오빠부대는 자신의 우상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산울림 또한 그 덫에 걸린 것으로 보였다. 단 하나의 위안은 그의 고전 "회상"이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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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삼총사 / O.S.T ... 산울림 (1982, D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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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어린이에게 보내는 산울림의 동요선물 제2집 (1981, DAS)
1977년 "개구장이"의 뒤를 이어 두번째로 발매된 산울림의 동요 앨범. 폭발적인 창작력은 이 장르에도 마찬가지여서 바로 이듬해에 "운동장"을 타이틀로 하는 세번쩌 앨범이 나오고 84년에 "동심의 노래"를 더 만든다. TV의 댄스뮤직에 밀려 몰락해가는 '장르'인 동요에 대해 이들이 환기시킨 공헌은 독립적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 앨범을 듣고 자란 세대가 바로 본격적인 문화산업시대의 한국대중음악을 결정짓는 세대가 되었다. 격세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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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7집 - 산울림 제7집 (1981, DAS)
조용필의 3집, 변진섭의 1집에 비견되는, 셀 수 없는 히트 싱글이 연속적으로 포진된 끔찍한(?) 앨범. 제대학 돌아온 형제들의 연주도 물이 오를 대로 올랐으며 김창완의 시정(詩情) 또한 거의 샘물과 같이 흘러 넘친다. 3집처럼 김창훈이 "가지마오"로 선제 공격을 터뜨리면 "독백" "하얀 밤" "청춘" "노모" "하얀 달" 등 무수한 보물들이 연이어 차례를 기다린다. 이 앨범은 지금 삼십 살을 전후한 세대가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서한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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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6집 - 산울림 제6집 (1980, SRB)
광주의 5월을 덮어버린 노래는 물론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였지만 "창문넘어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를 위시하여 이 앨범의 B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발라드들도 결코 무시못할 지분을 행사했다. 이 앨범으로 산울림은 다시 달러박스의 지위를 회복했으나 김창완 자신이 실토하듯이 그것은 잘못 들어선 골목과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라드 언어들은 숱한 '사랑타령'과 구별되는 순결함이 아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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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컴필레이션 - 特選集 (198?, Colum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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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5집 - 산울림 제5집 (1979, SRB)
김창훈과 김창익이 입대하고 나서 김창완이 동생들의 입대 전에 기획 해 놓았다가 김창훈과 김창익이 휴가를 나온 기간을 이용해 마무리지은 앨범. 김창훈의 곡인데 사운드 전개가 신선한 느낌을 주면서 전체적으로 서정성이 강한 주제를 록 사운드와 멋지게 조화시키고 있다. 록 리듬과 전통 가락을 집합시킨 `무녀도` 와 `백자`, 김창완이 17살 때 작곡한 작품으로 그의 호소력 있는 보이스와 블루스 리듬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왜!가`는 산울림의 빼놓을 수 없는 명곡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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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4집 - 산울림 제4집 (1979, SRB)
연극, 영화, 드라마 등의 주제 음악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든 편집앨범으로 타이틀 곡 `특급열차`는 대배우 추송웅의 연극에 사용되었던 곡이며, `카멜레온` 역시 '제2의 관계'라는 연극의 테마곡으로 사용되었던 작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소`, `풋내기들의 합창`, `가을에 오시나요`는 라디오 연속극의 주제가, `거인의 숲`은 TV 연속극의 주제로 사용된 곡들이었다. 이 외에 `유리인형`, `어디로 갈까`, `내일 또 내일`, `바람부는 강 언덕` 임권택 감독의 영화 '내일 또 내일'에 사용되었던 곡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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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어린이에게 보내는 산울림의 동요선물 제1집 (1979, S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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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le - 내일 또 내일 / O.S.T ... 산울림 (1979, S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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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3집 - 산울림 제3집 (1978, SRB)
산울림의 앨범들중 대중적으로 많이 어필했던 앨범을 꼽으라면 그들의 데뷔앨범, 2집, 7집, 8집 정도를 꼽을 수 있을것 같다. 시장에는 참패를 했지만 그들의 3번째 앨범은 그들의 앨범중 가장 실험정신이 충만한 앨범으로 한국 락역사상 주목해 봐야할 명작중 하나이다. 락성향이 강한 김창훈의 역할이 두드러진 본작은 1, 2집에서 보여줬던 올겐 사운드를 완전히 배제하고 좀더 직선적인, 그리고 다른 한면으로는 필이 충만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일본의 일부 평론가들은 이 앨범의 곡들을 평하며 산울림을 우리나라 메탈의 효시로 보기도 했다.
디스토션을 건듯한 아주 거친 창법으로 노래하는 첫곡 `내 마음`을 시작으로 B면을 장악하고 있는 18분 45초짜리 대곡 `그대는 이미 나`를 통해 또다른 그들만의 실험정신을 보여준다. 그리고 A면의 끝을 마감하는 인상적인 어쿠스틱 분위기의 블루스 지향곡 `한마리 새 되어`는 기존 산울림의 다듬어지지 않는... 왠지 정통에서 벗어난듯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던 기존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아주 블루스필이 충만한 곡으로 그들의 이면을 보여주는 훌륭한 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ㆍ실험적 사운드 가득 ‘비운의 걸작’
한국 록의 역사에 산울림의 등장은 일대 사건이다. 신중현에게서 시작된 한국 록은 산울림으로 인해 두세 단계 뛰어 넘은 지점으로 진보했다. 1977년 데뷔앨범 ‘아니 벌써’로 혜성과 같이 등장한 산울림은 6개월 만에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발표, 전설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이 데뷔앨범과 2집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록의 진정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하지만 이런 점이 산울림의 실험적인 초기작과 대중성이 더욱 드러난 후기작에 대해 갑론을박을 일으키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 논란의 경계에 3집 ‘내 마음’이 위치하고 있다.
‘내 마음’은 2집이 나온 지 6개월 만에 제작된 앨범이다. 1, 2, 3집이 1년 만에 나온 셈이다.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각 앨범들은 뚜렷한 변화의 단계를 보여준다. ‘아니 벌써’로 한국 록의 대중화를 선언한 산울림은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서 사이키델릭, 펑크로 음악의 지평을 확장한다. 1, 2집의 연이은 대성공 끝에 나온 3집은 파격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상업적인 면에서는 참패를 기록했다.
전작들과 달리 잔뜩 일그러뜨린 김창훈의 보컬로 시작하는 ‘내 마음은 황무지’는 이 앨범의 방향성을 대표한다. 1, 2집에서의 김창완의 퍼즈(Fuzz) 기타톤은 더 거칠어졌고 사이키델릭과 펑크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첫 곡의 낯섦이 ‘아무말 안해도’ ‘한마리 새되어’ 등 대중성 있는 곡들을 압도한다.
그러나 이 앨범이 ‘대중성을 희생해 얻은 실험’의 결과물로 인식되는 진짜 이유는 앨범 뒷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아무도 없는 밤에’와 ‘그대는 이미 나’ 두 곡이다. 특히 ‘그대는 이미 나’는 논란의 중심에 있다. 18분이 넘는 곡 길이는 상당한 파격이었다. 1집의 ‘청자’,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계보를 잇는 이 사이키델릭 넘버는 2집까지 해온 록적인 시도의 결정판이다. 김창완의 퍼즈 기타는 전체를 관통하며 곡의 완급을 조율하고, 드럼과 베이스 라인도 물 흐르듯 유연하다. 2트랙 녹음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결과물이기에 그 천재성은 더 돋보인다.
그러나 시장은 이 시도를 외면했다. 1집 ‘나 어떡해’의 신선함과 2집 ‘안개속에 핀 꽃’의 감성을 좋아했던 산울림 팬이라면 LP 한 면은 포기하고 들어야 했을 것이다. 실험적인 사이키의 향연은 그들에게 배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로 이러한 시도는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1, 2집의 대중적인 성공에 의해 잉태됐지만, 결국 대중의 외면으로 저평가 받는 ‘비운의 걸작’으로 남았다.
하지만 초기 산울림 사운드를 집대성한 이 앨범은 한국 사이키델릭 록의 전범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9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하는 인디신에 자양분을 공급했고 일본에서까지 그 진정성을 인정받게 된다. 일본인 평론가 사토 유키에가 결성한 곱창전골이라는 밴드는 99년 ‘그대는 이미 나’를 리메이크 했다. 이후 산울림은 김창완의 독재 체제로 록, 팝, 동요를 넘나드는 다양한 길을 모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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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single - 산울림 제2집 (1978, S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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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1집 - 산울림 새노래 모음 (1977, SRB)
77년 12월 15일에 발매된 산울림의 데뷔앨범으로 록 앨범으로서는 거의 최초의 히트 앨범이라 할 만하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아니벌써`와 `문 좀 열어줘`, `불꽃놀이`, `안타까운 마음` 등의 곡들을 통하여 이들이 들려준 독특한 사운드, 생동감 넘치는 리듬, 신선한 멜로디 등은 당시로서는 하나의 문화충격이었다. 여기에 구어체 문장을 그대로 가사로 사용해 위트와 패러독스가 생동감 있게 표현된 노랫말 역시 우리 가요계의 발전에 커다란 시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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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의 일이었다. 가벼운 노크소리와 함께 한 젊은이가 들어섰다. "사장님이시죠?" "예!" "이것 좀 들어봐 주세요." 젊은이가 바로 金昌完君…… 그러니까 "산울림"의 리이드 싱어였던 것이다. 나는 흔히 하듯 녹음기에 카세트를 꽂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놀랐다. 마치 AFKN의 한 뮤직프로에서나 나올듯한 다이나믹한 사운드,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리듬 터치, 그리고 또 너무도 개성적인 멜로디의 진행과 창법……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그만 매혹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 그들의 음악에 넘치는 젊은 활력, 밝은 익살끼……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풍요한 생명력의 조각들이라고 느껴졌으며, 마치도 회색 하늘을 가르고 내보이는 한조각 푸른 하늘…… 한줄기 햇살과도 같은 산선한 매력이라고 느껴졌다. 물론 젊은 것만큼 노련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며, 또 신선한 것만큼 완숙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젊음과 신선…… 그것은 바로 창작의 원천이며, 음악에 있어서는 흘러주는 생명의 약동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들 음악의 젊음과 신선한 감각, 그리고 약동하는 생명력의 리듬에 매혹되어 그들의 음악활동을 뒤밀어 주기로 작정했고, 여기서 이 음반은 시작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의 음악이 청중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결코 노련하지도, 완숙하지도 못하면서 던져주는 커다란 매력…… 이 매력의 근원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 싶을 뿐이다.
省音社 社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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