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기다림과 여행하는 것이다♡
The Best of~~ 김현식 본문
1958년 1월 7일 서울 출생으로 초등학교 재학 시절 외가가 위치한 옥천으로 내려가 시골 생활을 했는데 그는 후일 이를 두고 '나의 음악적 토양에 질 좋은 거름이 뿌려진 소중한 시기'라 평하기도 했다. 1년여가 지난 후 다시 서울로 전학했고 중학교 재학 시절 당시 남들은 전혀 관심 두지 않았던 아이스 하키 등에 매료되고 또 기타를 잡게 되면서 '60년대 미국 로큰롤 사운드에 심취하게 된다. 1974년 후기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밴드 부에서 음악을 배우던 중 2학년 초 자퇴하고 종로 등지의 검정고시학원을 전전한다. 물론 기존의 제도권 교육에 대한 반발이라기 보다 '음악'에 대한 열정 탓이었다 보는 편이 옳으리라. 더벅머리를 애써 기른 그는 기타를 메고 종로, 명동 등지의 통기타 업소를 누비기 시작했다. 1976년 가수 이장희의 주선으로 데뷔 앨범 녹음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장희의 갑작스런 도미(渡美)로 마스터 테이프까지 나온 상태에서 독집 출반 기회가 무산되고 말았다. 2년 뒤 지금은 잊혀진 이름인 (서라벌 레코드)에 의해 뒤늦게 앨범이 출시되었으나 그다지 확실하지 않은 음악적 정체성과 별반 매력적이지 않은 옐로우 보이스 등으로 대중적인 주목은 이끌어 내지 못한 채 활동을 접게 된다. 1982년 동부이촌동 공무원 아파트에 살림을 튼 그는 패스트푸드 전문점까지 열어 평범한 서울 시민으로서의 삶을 영위했고 이듬해 늘 '나의 분신'이라고 불렀던 첫 아들 완제마저 태어났다. 당시 그의 주 활동무대는 밤무대였다. 1984년 10월 2집 앨범을 내 놓아 다운타운 및 음악 다방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조원익이 이끌었던 동방의 빛에서 리드 싱어를 맡았고 그룹 해체 후에는 정성조가 리드했던 메신저스(Messengers)의 싱어로 거듭나 서서히 밤무대 최고의 스타로 부각되어 갔다. 1985년 김종진, 전태관 그리고 고(故) 유재하와 함께 그룹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조직해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작곡 능력이 부족한 그에게는 천군만마(千軍萬馬)와 같은 존재로 이 시점을 기화로 그의 음악 세계가 일취월장(日就月將) 진보를 보이게 된다. 단 사생활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해 가족들이 모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고 부인 김경자씨와도 별거에 들어가게 되었다. 1986년 봄, 여름, 가을, 겨울과 함께 만든 3집 앨범을 통해 그는 비로소 오버와 언더를 아우르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앨범 판매고도 거뜬히 20만장을 넘어 섰고 '비처럼 음악처럼', '가리워진 길' 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해 얼굴 없는 가수로 통하기 시작한다. 라디오 순위에 오른 것은 물론 심지어 TV 쇼 프로그램에 초청될 정도의 인기였다. 그러나 그 인기의 도화선에 겨우 지펴진 불씨는 오래가질 못 했다. 1987년 10윌 전인권, 허성욱 등과 함께 마약 상용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는 그의 연예 활동에 큰 지장을 초래했음은 물론 건강마저 크게 해치기에 이르렀다. 속죄의 시간이 흐르고 1988년 2월 여의도 63빌딩에서 재기 콘서트를 가진 그는 삭발을 하고 있었다. 순간의 허물에 사람들은 너그러웠다. 다들 그의 재기를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열화와 같은 박수로 성원해주었다. 본인 스스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콘서트라고 누차 밝히고 있을 정도다. 같은 해 9월 발표한 4집 앨범은 '언제나 그대 내 곁에' 외에 작곡가 윤상의 입지를 드높인 '여름밤의 꿈', 필청 하모니카 연주 트랙 '한국 사람' 등을 담고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독립시킨 후 다시 솔로로 나선 그는 이정선, 엄인호, 한영애 등이 주도한 '신촌불루스'의 3집 앨범에 참여해 '골목길', '환상' 등의 곡을 불렀고 이 때부터 그의 음악에는 재즈 및 블루스의 색채가 엿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보이스 톤도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았다. 구수하고 또 깊이 있는 굵직한 허스키 보이스로 때론 속삭이듯 또 가끔은 포효하며 무대를 장악했다. 1989년 11월 강인원이 주도한 [비오는 날의 수채화] 영화 음악 사운드트랙 작업에 권인하, 신형원과 함께 참여한 그는 동명 타이틀곡을 히트시켰다. TV 방송 차트 상위권에 TV 순위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내밀 정도였으니. 그러나 그의 폭음(暴飮)은 날로 그 정도가 심해져 건강은 악화일로를 걸었고 그의 스케줄에는 병원 정기 검진 항목이 추가되었다. 1990년 3월 15일 '넋두리'를 타이틀로 한 5집 앨범을 발표했다. 째깍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가 어찌 보면 그의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쉰 듯 갈라져 나오는 그의 정제되지 않은 고음 가창이 듣는 이로 하여금 아쉬움과 함께 경탄을 자아냈다. 그의 노래에는 이제 '혼'이 깃 들기 시작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더 이상 갈 곳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했던 것이다. 6집 녹음 작업을 병행하는 가운데 신촌블루스 그리고 '비오는 날의 수채화' 팀과의 전국 투어가 강행되었고 당시의 그를 두고 지인(知人)들은 말했다. '술의 힘에 의지해 몸을 유지하던 시기였노라' 고. 1990년 11월 1일 하오 5시 20분 지병인 간 경화증이 악화되어 자택에서 사망했다. 이듬해 2월 9일 그의 재기 공연이 있었던 여의도 63빌딩에서 (김현식 추모 콘서트)가 거행되었고 김수철, 이정선, 전영록, 강인원, 조하문, 한영애, 김태화, 봄, 여름, 가을, 겨울, 최호섭, 권인하 등 30여 명의 가수들이 참가해 그를 기리고 그의 노래를 불렀다. 추모 앨범[하나로]가 발매되었으나 팔리기 위한 앨범이 아니었던 고로 이내 절판되어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6집 앨범 가운데에는 전통 민요풍의 리듬 트랙이 곁들여져 지금껏 애창되고 있는 '내 사랑 내 곁에'가 담겨 있고 1996년에는 미발표 미완성 트랙을 후배 가수 김장훈이 함께 해 완성한 '다시 처음이라오'가 담긴 7집 앨범이 발매되었다.. 01. 사랑했어요 02. 어둠 그 별빛 03. 당신의 모습 04. 바람인줄 알았는데 05. 빗속의 연가 06. 가리워진 길 07. 슬퍼하지말아요 08. 비오는 어느 저녁 09. 우리 이제 10. 떠나가 버렸네 11. 비처럼 음악처럼 12. 그래와 단둘이서 13. 눈 내리던 겨울밤 14. 쓸쓸한 오후 15. 언제나 그대 내 곁에 16. 여름밤의 꿈 17. 사랑할 수 없어 18. 그대 내 품에 19. 기다리겠소 20. 넋두리 21. 내사랑 내곁에 22. 추억 만들기 23. 사랑 사랑 사랑 24. 이별의 종착역 25. 골목길 26. 환상 27. 우리 처음 만난날 28. 향기없는 꽃 29. 그거리 그 벤치 30. 도시의 밤
Guitar-엄인호,오태호 Bass-이원재 Drum-정태국 Key.-김명수,이창수 Sax.-엄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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