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기다림과 여행하는 것이다♡
차 본문
차
차는 차나무의 어린 잎을 따서 음료로 가공한 제품으로 전세계적으로 애용되는 기호음료로서 커피나 코코아 기타 음료를 능가
하는 세계 최대의 음 용량을 나타낸다. 차나무는 키가 2∼3 m인 관목과 30∼32 m에 달하는 교목이 있으며, 품종에는 중국종
과 인도종이 있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차에는 야생차와 재배차가 있는데, 야생 차는 828년(흥덕왕 3) 신라의 사신 대렴(大廉)
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씨를 지리산에 심은 데서 비롯되며, 중국산 소엽종(小葉種)이다. 재배차는 중국의 소엽종을 개량한
일본산 야부키타[藪北]종으로서 1927년부터 경남 ·전남 ·제주에 이식한 것이다. 식사 후에 차게 한 음료수로 마시는 것이 화
채라면 뜨거운 것으로 마시는 한국적 음료수가 과일이나 열매, 잎 등을 이용해서 만든 차라 하겠다.
◆ 차의 기원 ◆.
당(唐)나라의 육우(陸羽:727?∼808?)가 지은 < 다경(茶經) >
의 <차의 옛 일>편에는 한(漢)나라 이전에 차를 마신 고사가
적혀 있다.그러나 이러한 사료들은 인용된 책의 성립연대나
차를 가리키는 글자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은 전한(前漢)의 선제(宣帝) 때 왕포(王褒)라는 선비가 만
든 노예매매계약서인 < 동약(욍約)> (BC 59)이다.이 계약서
에는 양혜(楊惠)라는 과부의 전남편이 거느리던 편료(便了)
라는 남종을 왕포가 1만 5000냥에 사온 뒤 편료가 할 일이
적혀 있는데, 무양(武陽)에 가서 차를 사오는 일과 손님이
오면 차를 달여서 대접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이로써 차
마시는 풍습이 전한시대에 있었음을 알 수 있으므로 이를
차 마시기의 기원으로 본다.
◆ 차의 전파 ◆.
한말 이능화(李能和)의 < 조선불교통사> 에는 김해의 백월
산에 있는 죽로차(竹露茶)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비인 허왕
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씨에서 비롯되었다는 전설이 적혀
있다. 또 김부식(金富軾)의 < 삼국사기> 중 <흥덕왕 3년 12
월조>와 이규보(李奎報)의 <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 일
연선사(一然禪師)의 < 삼국유사> 에 전재된 <가락국기><명
주 오대산(溟州五臺山)의 보질도태자전기(寶叱徒太子傳記)>
<오대산의 오만진신(五萬眞身). <월명사(月明師)와 도솔가
(兜率歌)> <경덕왕(景德王)과 충담사> 등의 문헌과 중국에
서 부처님께 차를 달여 공양하는 종파로서 신라에 전래된
연대(天台宗은 540∼575, 律宗은 602, 密宗은 635, 華嚴宗
은 671, 禪宗은 826년경) 등에 의하여 차씨가 전래된 828년
이전에도 신라에서는 차를 마셨음을 알 수 있다. 차의 생산
지는 남부지방에 국한되어 수요에 미치지 못하였므로 신라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국차가 수입되었으며, 한말과 일
제강점기에는 일본차도 수입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1292년
에는 고려시대의 향차(香茶)가 원나라에, 1627년, 29년, 36
년에는 천지차(天地茶)와 작설차(雀舌茶) 50봉(封)씩이 후
금에, 1637∼45년에는 차 1,000포(包)씩이 청나라에, 1923
∼45년에는 정읍(井邑)의 천원차(川原茶)가 오사카[大阪]
에, 1944년경 보성(寶城) 차밭에서 만든 5만 개의 전차(錢
茶)가 몽골[蒙古]에 보내졌다. 또 73∼77년에는 대한다업
과 마루베니[丸紅]회사와의 계약에 의하여 매년 10∼15 t
의 보성녹차가 일본에 수출되기도 하였다.
◆ 여러가지 차 도구◆.
● 차관 - 차를 우려 내는 그릇.
● 찻잔 - 도자기로 된 것이 좋으며 크기는 커피잔 만한 것으
로 고른다.
● 차수건 - 찻잔을 닦는데 쓰는 행주로 무명 베나 삼베가 좋
다.
● 숙우 - 물을 식히는 그릇.
● 차 숟갈 - 차를 차관에 넣을 때 사용한다.
● 물 받는 그릇 - 남은 물, 차 찌꺼기를 담는 그릇.
● 차 탁 - 차관, 찻잔을 올려 놓는 탁자.
● 차 통 - 차를 옮겨 담는 그릇.
차의 종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