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산다는 것은 기다림과 여행하는 것이다♡

Lost Song / Jane Birkin(제인 비킨) 본문

음악,영화/샹송.칸초네.파두

Lost Song / Jane Birkin(제인 비킨)

dhgfykl; 2009. 12. 16. 07:23

 

 

 

 

 

 

 
 
상실, 비현실,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깨져버릴 듯한 유리조각의 마력 - 제인 버킨

 

 

 

1979년 'Nouvelle Chanson(새로운 샹송)' 시대를 거쳐오면서,

 프랑스 샹송계엔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이를테면,

종래의 가사 위주의 샹송에서, 멜로디가 부상하고,

그 멜로디에 여러 가지 색채가 입혀진 것

- 따라서, 이전에는 주로 샹송의 분류가 가사를 중심으로

'낭만적 샹송', '정치적 샹송', '독백적 샹송' 등으로 이뤄진데 비해,

이후 샹송의 분류는, '로크 샹송', '블루스 샹송' 등으로 변해오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가수들의 경향도 분위기보다는 가창력을 기준으로 평가되어 오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이제 우리가 만나볼 순수한 가수로서의

 제인 버킨아무래도 평점 이하일 것이다.

 영국 출신이기 때문에 불분명한 프랑스어 발음,

변성을 거치지 못한 듯한 여린 목소리,

 늘 숨이 찬것 같은 아슬아슬한 음정 등

 '에디뜨 삐아프'나 '빠뜨리샤 까스'를 기대하고

그녀의 노래를 듣는다면,

아마 첫소절이 끝나기 전에 실망부터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제인 버킨은 첫 데뷔를 한 1969년부터, 오십이 가까운 현재까지,

샹송계에 독보적인 신화를 구축하고 있다.

 

그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상실, 비현실,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깨져버릴 듯한 유리조각의 마력'으로

 가장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

너무도 투명해서 순수한 무방비, 그러나 손을 대기만 해도 깨져버리고,

 손가락에 빨간 피가 배어나올 듯한 위태로운 유혹

- 그녀의 이러한 신비한 매력은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고, 제인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줬던

'Jane B 신화의 창조주'인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세르쥬 갱스부르에 있어서 '제인 버킨'은

 자신의 가장 대표적인 대변인이었다.

 '제인'의 표현을 빌자면, "나는 세르쥬의 또 다른 얼굴이다.

 - Jesuis la face B de Serge"였던 것을 보더라도

 이 두 사람이 음악과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서로에게 중요한 모티브였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1991년 3월 2일 알콜성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세르쥬 갱스부르'가 없는 '제인'의 홀로서기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서글픈 의혹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앨범은 갖가지 스캔들과 사랑, 파경, 그리고 우정으로 이어진

'세르쥬'와 '제인'의 'Belle Epoque(아름다운 시절)'의

가장 아름다운 샹송들을 들을 수 있는 행복한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해주고 있다.

 

1947년 런던 태생의 '제인 버킨'은 '세르쥬'를 만나기 전에는,

 여배우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배우수업을 하며,

 겨우 배우로 데뷔한 작은 영국 아가씨에 지나지 않았다.

 18살 때 'The Knack'란 영화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던 '제인'은

스무살이 되던 해 1967년 빠리로 향했고 그후,

 세르쥬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녀의 인생에 전환기를 가져오게 했다.

 

 이미 '브리지뜨 바르도', '발레리 라그랑쥬', '미레이유 다르꼬' 등

 섹스어필의 프랑스 여배우들의 앨범을 제작한 바 있는

 '세르쥬'는(그후 그는 '까뜨린느 드르보', '이자벨 아쟈니', '바네사 빠라디' 등의 앨범도 제작했다.)

투명한 푸른 눈과 창백한 피부에 육감적인 붉은 입술을 가진 '제인'에게서,

 그 안에 감춰진 부서질 듯한 순수한 에로티즘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1969년 '세르쥬'와 '제인'은 '69'를 비롯해서 'L'annee Erotique(에로틱한 해)',

 그리고 마치 끊어질 듯한 '제인'의 숨결과 함께 격정적인 사랑을 노래한

최초의 넘버 원 히트곡(프랑스와 영국에서 동시에)인

 'Je T'aime, Moi Non Plus(당신을 사랑해... 난 아니야)'을 내놓게 되고

이때부터, 이들의 신화는 시작된다.

 

 이후 세르쥬는 'La Decadanse(데카당스)',

 'Di-Doo-Dah', 'Lorita Go Home' 등의 '제인'만을 위한 곡을 쓰기 시작해,

그녀의 내재적 환상을 끄집어내게 된다.

 

그것의 극치를 이룬 것은, 78년 발표된 'Ex-fan Des Sixties(60년대의 우상들)'과

1983년 '골든 앨범'과 '샤를르 크로상'을 수상한 'Baby Alone In Babylone'일 것이다.

 

특히 브람스 교향곡 제3번 3악장을 편곡한 'Baby Alone In Babylone'은

 '제인'으로 하여금 '세르쥬'의 가장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통로가 되게 했고,

 이곡은 또한 '제인'을 프랑스 샹송의 감성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가수로 우뚝 서게 했다.

 

 한편, 그녀는 영화에 대한 열정도 버리지 않았다.

 영화에 있어서 '제인'은 사뭇 달랐는데,

환상의 너울을 벗어 던진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주는데

'끌로드 지디'를 비롯해서

 '로제 바딤', '쟈끄 두와이용', '쟝 뤽 고다르', '아그네스 바르다' 등의 감독들,

 그리고 물론 '세르쥬 갱스부르'의 영화 등에 출연했다.

 

 그러나 1980년 이혼 후에도 함께 작업을 해오던 그들은

1985년, 45회전 싱글인 'Quoi(무엇)'의 슬럼프로

 그들의 조화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해,

20년 가까이 삶과 노래, 영화 등에서

끈끈하게 얽혀졌던 결속은 파경을 맞이하게 된다.

 

그후, '제인'은 '레오 훼레' 등의 다른 아티스트를 찾아야 했고,

'세르쥬'는 새롭게 만난 연인 '밤부(Bambou)'를

 제2의 '제인 버킨'으로 만들려 했지만 둘다 실패한다.

 

한가지 다행한 일이라면,

 둘사이에서 태어난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성공적인 데뷔라고 할까? '

제인'의 무방비적인 순수함,

그리고 '세르쥬'의 끈끈하고 퇴폐적인 상상력을 이어받은 '샤를로뜨'는 언뜻

, 하얀 백지를 연상하게 한다.

텅 빈 듯한, 그러나 무엇이든 그려 넣을 수 있는 여백이

'샤를로뜨'는 두사람에게 있어서 마지막 보루였던 것이다.

 

 부모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그녀는 열 네살 때

 'L'Effrontee(귀여운 반항아)'로 이미 주목을 받으며,

 프랑스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았고,

 아버지와 함께한 영화 'Chalotte Forever'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영화계의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아버지와 함께 만든 앨범들에서 '샤를로뜨'는

 엄마인 '제인' 뺨치는 에로티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제인'과는 달랐다.

 

 '세르쥬'는 90년 이제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 '제인'에게

마지막 선물을 한다. 그것은 'Amours Des Feintes(거짓된 사랑들)'

-이 노래로 '세르쥬'는 20여년에 걸친

 그들의 어긋났던 사랑에 대한 참회를 고백했고,

그 이듬해 새로운 모험을 찾아 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또 그 이듬해, 조금은 늙고 초췌해진 모습의 '

제인 버킨'은 '세르쥬 갱스부르'의 마지막 유품이 된

 '제 7회 Victoire De La Musique'(음악의 승리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자 가수상을 수상했다.

 

 

http://cafe.daum.net/niegroup

 

연약하고 불안한 가성의 소유자, 제인 버킨(Jane Birkin)은
"47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여배우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배우 수업을 받고
순조로이 배우로 데뷔했던 그녀는 10대 후반에 영화음악가
존 배리(John Barry)를 만나 딸 케이트를 낳지만
영화 작업 중에 만난 세르주 갱스부르와의 만남이 배리와의
관계를 급속도로 냉각시켰고 이후 그녀의 운명을 결정짓고 만다.
스무살이 되면서 파리로 간 그녀는 세르주 갱스부르와의 파트너쉽으로
"69년, "69 L"annee erotique, Je t"aime...Moi non plus 등을 내놓는데
특히 원래는 브리지트 바르도를 위해 만들어졌고 이미 그녀의 보컬로
발표한 바 있었던 Je t"aime...Moi non plus는 제인 버킨의 끊어질 듯
가파롭고 격정적인 목소리로 소화된 이 버전으로 외설 처분과 함께
몇몇 국가에서는 판금 조치로까지 사태가 발전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소동들로 한층 더 인기를 얻게 되었음은 물론,
결국 프랑스와 영국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했으며 미국 싱글 차트에도
69위까지 진출해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갱스부르의 작품이 되었다.
이후 La ballade de Johnny Jane, La decadanse, Lolita go home 등
갱스부르의 롤리타 콤플렉스를 반영하는 듯한 연약하고 여성스러우면서도
에로틱한 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 사이에서는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태어났고 파트너십도
순조로운 듯 하였지만 "80년에 그들 부부도 파경을 맞고
그 후 제인 버킨은 프랑스의 영화 감독 자끄 드와이옹(Jacques Doillon)과
세 번째 결혼을 한다.
그러나 3년 뒤인 "83년 자신의 곡들을 갖고 제인을 다시 찾은 갱스부르의
제의로 갱스부르와 제인은 다시 음악적 재결합을 하고 그렇게 해서
명반 BABY ALONE IN BABYLON이 탄생했다.
브람스 교향곡 제 3번 3악장을 편곡한 타이틀곡은 영국 태생인 제인을
프랑스 감성을 대표하는 위치에 올려놓았다.
버킨은 이후로도 가수로 그리고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지속해 나갔다.

 

 

 

 

사랑과 평화의 시대였던 '요동치는 1960년대'의 산물이라는 평을 듣는 영국 배우 겸 가수 제인 버킨은

 1966년 안토니오니 감독의 실험작 [욕망(Blow-Up)]에서

두 명의 누드 모델 중 한 명으로 나와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60년대 중반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007] 테마음악의 작곡가 존 배리와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얼마 후 바로 남편과 헤어지고

 제인 버킨은 프렌치 팝 스타 세르주 갱스부르를 만나게 된다.

그 둘은 'Je T'Aime...Moi Non Plus'처럼 아주 끈적끈적하고

달콤한(혹은 느끼한) 노래들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영화 배우로도 계속 활약해, 1973년에는 로저 바딤 감독의 영화

 [돈 후앙 73]에서는 양성애자로 등장해 브리지트 바르도의 연인 역할을 연기했다

. 그 후 현재까지 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해왔다.

한편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 사이의 딸인 샤를로트 갱스부르도

 [제인 에어](1996)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배우다.

1. 군인의 딸은 울지 않는다 (A Soldier's Daughter Never Cries) 1998년
2. 우리들은 그 노래를 알고 있다 (On Connait La Chanson / Same Old Song) 1997년
3. 악마와 깊고 푸른 바다 사이에서 (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Blue Sea) 1995년
4. 시몽 시네마의 101의 밤 (Les Cent Et Une Nuits De Simon Cinema /

A Hundred And one Nights Of Simon Cinema) 1995년
5. 누드 모델 (Le Belle Noiseuse / The Beautiful Troublemaker) 1991년
6. 아무도 모르게 (Kung Fu Master) 1987년

7. 오른쪽에 주의하라 (Soigne Ta Droite / Keep Up Your Right) 1987년
8. 내 인생의 여인 (La Femme De Ma Vie) 1986년
9. 더스트 (Dust) 1985년
10. 지상의 사랑 (L'Amour Par Terre / Love on The Ground) 1984년
11. 백주의 악마 (Evil Under The Sun) 1982년
12. 여신의 늪 (Egon Schiele - Exzesse / Egon Schiele: Excess And Punishment) 1981년
13. 나일 살인 사건 (Death on The Nile) 1978년
14. 스턴트맨 (L'Animal / The Animal) 1977년
15. 거위 사냥 (La Course A L'Echalote / The Wild Goose Chase) 1975년
16. 삐에르의 외출 (La Moutarde Me Monte Au Nez / Lucky Pierre) 1974년
17. 돈 쥬앙 73 (Don Juan 73 / Ms. Don Juan) 1973년
18. 은밀한 투영 (Projection privee / Private Projection) 1973년
19. 욕망 (Blowup / Blow-Up) 1966년

첨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