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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기다림과 여행하는 것이다♡

Santana (산타나~ ) 본문

음악,영화/연주음악.경음악

Santana (산타나~ )

dhgfykl; 2009. 12. 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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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나(Santana)는 blues와 rock, Latin 음악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30년 가까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어온 밴드의 이름이면서 그 밴드의 리더이자 기타를 연주한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의 이름이기도 하다.

원래는 Santana Blues Band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산타나는 60년대 중반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되었다. 처음에는 사이키델릭 록을 하는 그룹들이 출연하는 San Francisco Dance Hall에서 주목을 받았으나 Latin 음악에 뿌리를 둔 그룹은 적응을 하지 못하였다.
69년 8월의 역사적인 Woodstock Festival에서 인기를 끌은 이들은 빌 그래험(Bill Graham)의 주선으로 Columbia와 계약하게 된다.
당시 멤버는 카를로스 이외에 건반과 보컬에 그렉 롤리(Gregg Rolie), 베이스에 데이브 브라운(Dave Brown), 드럼에 마이크 슈리브(Mike Shrieve), 그리고 타악기에 각각 아르만도 페라자(Armando Peraza), 마이크 카라벨로(Mike Carabello), 호세 에이리어스(Jose Areas)이었다.

데뷔 앨범 [Santana]는 싱글 'Evil Ways'가 4위를 차지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어서 70년 발표한 [Abraxas]는 6주간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싱글 'Black Magic Woman'과 'Oye Como Va'도 큰 인기를 얻었다.
71년 [Santana III]에서는 기타 연주자 닐 숀(Neal Schon)의 참여로 7인조로 확장되었으며, 앨범은 5주간 정상을 차지하였다.

기타 연주자 산타나는 드럼과 보컬을 병행하는 버디 마일즈(Buddy Miles, 나중에 산타나의 멤버로 가입한다)와 듀엣으로 실황 음반을 72년에 발표한다.
이어서 그룹 산타나의 4번째 앨범을 발표하는데 연주인 이름에 베이스인 Brown과 타악기인 Carabello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4집 [Caravanserai]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73년에는 산타나가 죤 맥래플린(John McLaughlin)과 두 번째 듀엣 앨범을 내놓는다.
이어서 [Welcome]이란 앨범을 발매하지만 밴드의 이름은 The New Santana Band였으며, Rolie와 Schon은 그룹 Journey의 결성을 위해 떠나게 된다.

이 후의 그룹 산타나는 카를로스 산타나가 계속 주도하면서 고용된 연주인들로 구성된 형태를 갖게 되며, 카를로스 자신도 종종 약간 다른 스타일의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92년 Columbia 레코드사와의 오랜 계약을 마치고 Polydor로 이적하여 [Milago]를 발표하였으며, 94년에는 Arista사로 이적했다.
96년에는 내한공연으로 국내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하였으며, 99년에는 신작 [Supernatural]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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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산타나는 1947년 7월 20일 멕시코의 Autlan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바이올린을 배우며 현악기의 세계에 눈을 떴다. 이후 1955년 가족과 함께 티주아나로 이주해 거기에서 로큰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부터 그는 기타를 잡고 티 본 워커나 비비 킹, 존 리 후커 등과 같은 전설적인 블루스맨들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1961년에 산타나는 샌프란시스코로 가 기타 연습을 하며 그 분위기에 젖어 들었는데 그곳에서 다양한 뮤지션들을 알게 된다. 몇년 후인 1966년 그렉 롤리, 거스 로드리게즈, 마이클 카라벨로, 대니 할 등과 함께 산타나 블루스 밴드를 결성해 샌프란시스코의 클럽 등지에서 연주하며 프로 뮤지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미 이때부터 산타나는 블루스에 라틴적인 스타일을 섞는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가 연주하는 클럽을 찾은 공연 기획자 빌 그레함(Bill Graham)에게 발탁되어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빌 그레함은 산타나가 추구하고 있는 음악(라틴 + 락 + 블루스)이 충분히 대중들에게 새로운 호기심을 줄 수 있으리라고 여겨 마이크 블룸필드와 알 쿠퍼의 [The Live Adventures of Mike Bloomfield And Al Kooper]라는 앨범에 참여시키며 그의 존재를 록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산타나 밴드가 큰 주목을 받은 최초의 일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였다. 1969년에 있은 사상 최대의 록페스티벌 우드스탁에서 산타나는 라틴록이 무엇인지를 사이키델릭적인 성향과 잘 혼합해 폭발적으로 들려주었다. 바로 이 여세로 산타나는 셀프 타이틀의 데뷔앨범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1969년 8월에 발매된 산타나의 데뷔앨범은 당시의 시대적 조류가 약물과 반전을 중심으로 하는 사이키델릭과 하드록에 적극적으로 손을 흔들어 주던 때라 사이키델릭적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Soul Sacrifice'가 대표적인 예다. 이곡은 산타나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도 연주해 폭발적인 반응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 'Evil Ways' 'Jingo' 등의 곡들도 당시의 음악적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이 앨범은 1969년 9월 13일에 빌보드 앨범 차트에 처음 등장한 이래로 차트 4위에까지 랭크되었다. 이후에도 이 앨범은 차트에 장장 108주 동안이나 랭크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렉 롤리의 건반이 크게 활약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라틴록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는 데에서 본작의 역사적 가치는 매우 크다.

1970년 10월에 산타나는 두번째 앨범 [Abraxas]를 공개했다. 데뷔작부터 끈질기게 추구하고 있는 라틴록 사운드가 그 절정을 이루는 이 앨범엔 'Oye Como Va', 'Black Magic Woman/Gypsy Queen' 등 라틴록 불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저 유명한 기타 인스트루멘틀 'Samba Pati'가 애절한 선율로 가슴을 적셔준다. 전체적으로 끈적끈적하고 원시적 정열이 살아있는 기타와 타악기가 역동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데뷔작과 이 두번째 앨범이야말로 가장 산타나다운 음악과 정신세계가 농축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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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후인 1971년 9월 [Santana Ⅲ]라는 세번째 앨범이 공개되었고, 이듬해 11월에는 산타나와 마이크 슈리브가 공동 프로듀스한 4집 [Caravanserai]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선 3명의 퍼커션 주자, 리처드 키모드와 탐 코스터 등 두명의 건반주자, 그리고 드럼의 마이크 슈리브(Mike Shrieve), 카운트 베이시 악단 출신의 레온 토마스(Leon Thomas) 등이 리드보컬 및 퍼커션을 연주했고 거기에 닐 숀의 기타와 그렉 롤리의 건반까지 가세하고 있다. 아방가르드 재즈에서나 들을 법한 색소폰 인트로가 담긴 첫곡 'Eternal Caravan Of Reincarnation'은 동양적 명상의 체취가 강하게 느껴지는 연주를 들려준다. 닐 숀이 기타를 맡고 있는데 종래 우리가 알던 닐 숀과는 전혀 다른 매우 신비적이고 사색적인 울림의 사이키델릭 기타를 연출한다. 'All The Love Of The Universe'의 초반부에서도 명상적인 분위기는 여전하다. 이곡에서는 그렉 롤리의 건반이 맹활약을 펼치며 마이크 슈리브의 드럼 또한 날카로운 필 인을 펼친다. 이외에 전형적인 블루노트 펜타토닉 어프로치의 'Song Of The Wind', 산타나가 퍼커션을 연주하고 있는 'Stone Flower' 등도 주목할만하다. 수록곡 중에서 'La Fuente Del Ritmo'는 가장 박진감 넘치는 재즈록 사운드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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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산타나는 드러머 버디 마일즈와 함께 [Live]라는 조인트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산타나와 버디 마일즈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통해 서로 친해졌고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이 조인트앨범이다. 동년 8월 1일 다이아몬드 헤드 크레이터에서의 공연을 담은 이 라이브음반은, 그렉 에리코(Gregg Errico) 등의 드럼주자를 비롯해 3명의 콩가 주자들이 참여해 아프로 쿠반에서 라틴 등 다양한 리듬의 세계를 들려준다. 닐 숀도 참여해 산타나의 기타를 서포트하고 있다. 첫곡인 'Marbles'부터 산타나의 날카로운 기타와 타악기가 현란한 라틴록의 세계를 보여주며, 버디 마일즈의 히트곡인 'Them Changes'에서는 펑키 그루브가 넘실대는 연주를 들려준다.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Free Form Funkafide Filth'다. 기타와 타악기, 건반은 물론 색소폰과 플룻까지 가세해 24분이 넘게 솔로타임을 교환한다. 한편의 장대한 재즈록 사운드가 아닐 수 없다.

1973년에 산타나는 [Welcome]이라는 앨범과 함께 [Love, Devotion, Surrender]를 공개했다. 특히 이 [Love…]는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존 맥러플린과의 조인트앨범이라는 데에 그 의미가 크다. 카를로스 산타나와 존 맥러플린의 가장 큰 공통점은 양자 모두 인도의 철학과 신비주의, 종교 등에 심취해 이름마저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 두 명상적 신비주의자들이 만나 기타 조인트앨범을 공개한 것이 바로 이 앨범이다. 라틴록의 대가와 재즈록의 대가끼리의 만남이라 불꽃 튀는 기타 솔로잉이 흐르지만 그보다는 앨범 타이틀이 상징하듯 전체적으로 '사랑'과 '평화'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열반의 세계로 안내한다. 존 콜트레인을 추모하는 차원에서 프리재즈 시절의 명곡이자 존 콜트레인 최고의 역작인 'A Love Supreme'을 연주하고 있다. 이외에 건반주자 얀 해머가 드럼을 연주하는 등 세션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화려하다.

1974년에는 LA의 소울밴드 테이스트 오브 허니(A Taste Of Honey) 출신의 그렉 워커(Greg Walker)가 산타나 밴드의 새 보컬리스트로 가세해 [Borbollett]를 완성시켰다. 여기에서는 색소폰 주자 줄스 브로사드(Jules Broussard)도 세션으로 참여해 사운드에 색채적인 풍성함을 더해주기도 했다. 한편 같은 해 [Illuminations]가 공개되었고, 1976년에는 영국 BBC TV에 출연해 호평을 받았다. 앨범 [Amigos]는 1976년 3월에 공개되었다. 이 작품은 빌보드 앨범 차트 10위에까지 올라 대중성과 음악성을 겸비한 앨범으로 평가받았다. 수록곡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인스트루멘틀 'Europa(Earth's Cry, Heaven's Smile)'는 당시의 기타키즈들이 한번쯤은 카피하려고 했던 감동적인 명곡이다. 이외에 드럼 하이 해트의 날카로운 비트-마치 예전 'Shift'를 듣는 듯한-와 타악기 등이 고루 빛나는 대곡 'Dance Sister Dance(Baila Mi Hermana)'도 주목할만하다. 일본 음악 평론가 협회로부터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 이어 [Festival]이 공개되었고, 이듬해 10월엔 [Moonflower]가 공개되었다. 산타나와 탐 코스터(Tom Coster)가 공동 프로듀스한 이 앨범에서는 로드 아전트(Rod Argent)가 작곡한 'She's Not There'가 큰 인기를 얻었다. 원곡을 남미적 체취가 늘씬 풍기는 열정적인 사운드로 리메이크한 이 곡은 이후 산타나의 대표곡 중의 하나로까지 평가받기에 이른다. 빌보드 앨범 차트 10위까지 오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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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0월에 발매된 [Inner Secrets]도 어디서 많이 들어봤음직한 'Open Invitation' 등을 위시한 곡들을 수록하고 있으며, 이듬해에 공개된 [Oneness-Silver Dreams Golden Reality]는 산타나의 신비주의적 기호가 잘 나타나 있다. 그의 동양철학, 특히 선(禪) 사상에 대한 심취 정도를 여실히 엿볼 수 있는 것으로, 앨범 자켓에도 'The Solo Album-Devadip Carlos Santana'라고 적혀 있을 정도다. 수록곡 중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oneness'이다. 제목에서도 명상적 종교적인 체취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건반의 차분한 배킹을 기반으로 사색적이며 종교적인 기타 솔로가 흐른다. 와와가 아주 미묘하게 걸려 음색이 변해가는 것도 주목해서 들을만하다. 'Song For Devadip'도 대곡 중의 하나다. 처음엔 차분하게 전개되다가 점차 록적인 형태로 흐르는데 특히 후반부에서 와와기타가 강렬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산타나의 명상과 신비주의가 록의 이디엄으로 용해된 앨범이다. 산타나로서는 대중적인 데에 얽메이지 않고 오로지 음악적인 순수성을 보인 마지막 작품이 되는 셈이다.

1979년 9월에 등장한 [Marathon]부터 산타나는 본격적으로 대중적 팝음악의 노선을 걷게 된다. 키쓰 올슨이 프로듀스를 맡은 이 앨범은 그간 라틴록의 정도만을 걸어오던 그답지 않게 산타나의 곡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팝적인 넘버 'Lightning In The Sky', 'Stand Up' 등을 필두로 다수의 곡들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팝음악의 노선을 견지한다. 수록곡 중 타악기의 비트가 현란하게 연출되는 'All I Ever Wanted'는 차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본격 대중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앨범인만큼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도 10위까지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앨범부터 제프 벡, 브라이언 오거 등과 활동한 바 있는 알렉스 리거트우드(Alex Ligertwood)가 리드보컬로 활동했다.
[Marathon]에서 평론가들로부터 외면을 당해서인지는 몰라도 1980년 산타나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Swing Of Delight]라는 앨범이 그것이다. 건반의 허비 행콕, 드럼의 토니 윌리엄스와 하비 메이슨, 베이스의 론 카터, 색소폰의 웨인 쇼터 등 당대 재즈록의 거장들이 대거 참여해 재즈록의 현란한 잼을 한판 벌인 이 역작을 통해 산타나는 자신이 여전히 음악적으로 무죄임을 증명했다. 수록곡 중에서도 'Swapan Tari'라는 작품은 산타나의 기타솔로가 가장 많이 담겨져 있는 곡이다.

[Swing…]의 타이트한 긴장감과 명석하고 대가적 플레이에 반해 1981년 4월에 공개된 앨범 [Zebop!]-키쓰 올슨이 프로듀스-은 그해 4월 18일 빌보드 차트에 등장해 9위까지 오르는 등 크게 히트한다. 전체적으로 산타나의 기타도 좋지만 리드보컬과 타악기의 연주가 특히 색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1940년대의 재즈넘버를 우수에 가득찬 라틴록 인스트루멘틀로 연주하고 있는 감동적인 'I Love You Much Too Much'는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히트 차트에서는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Winning'이 빌보드 싱글차트 17위에 올라 앨범 판매에 불을 당겼다. 아만도 페라자(Armando Peraza)의 타악기기 종횡무진 현란한 비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1982년 8월에 공개된 [Shango]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상업적인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으로 'Hold on'이 있다. 이곡은 동년 8월 14일 빌보드 싱글차트에 처음 등장해 15위까지 올랐으며 무려 14주 동안이나 차트에서 계속 강세를 떨쳤다.

1983년의 [Havana Moon]과 1985년의 [Beyond Appearances] 등에 이어 대중적 인기를 확고히 한 산타나는 1986년 영화 [라 밤바(La Bamba)]의 사운드트랙까지 작곡하며 전방위적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1987년 영국-소비에트 록 콘서트에 참가해 음악이 이데올로기를 앞선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 그는 같은 해 10월 [Blues For Salvador]라는 앨범을 발표한다. 산타나 자신이 체스터 톰슨과 공동 프로듀스를 맡은 이 앨범은 한달후인 11월 7일 처음 빌보드 앨범 차트에 진입하기 시작했으나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산타나로서는 비교적 색다른 스케일과 코드웍을 시도한 앨범이라 그간 산타나의 서정미와 감미로움, 라틴적 정서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앨범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앨범은 전체적으로 매우 심오하고 사색적 명상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수작이었다. 'Blues For Salvador'나 'Bella'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타나의 기타는 매우 블루지하며 재즈적인 면도 내포하고 있다. 비록 상업적으론 실패했지만 산타나 기타의 무르익은 음색과 라인, 그리고 음악성을 접할 수 있어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아내었다.

전작 [Blues…]의 대중적 실패 때문인지 [Freedom]에서는 다시 대중적인 영역으로 깊이 파고 들어간 흔적이 엿보인다. 전체적으로 듣기에 부담이 없는 곡들이 대부분이며 'Love Is You'와 같이 전형적인 산타나식 우수의 멜로디가 깃든 인스트루멘틀도 있다. 수록곡 중 'Deeper, Dig Deeper'에선 산타나가 의외로 매우 트리키한 솔로 프레이즈를 펼쳐 놀라움을 준다. 현대적인 감각의 세련된 오블리가토는 정말 산타나인가 할 정도로 의문이 들게 하는 것이다.
1988년에는 [Viva Santana!]를 공개했고, 1년후엔 산타나에게 큰 영향을 준 블루스 기타리스트 존 리 후커의 솔로앨범 [The Healer]에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다. 얼마후 산타나는 [Spirit Dancing In The Flesh]를 발표하고, 1992년 폴리돌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은 후 [Miragro]를 발매했다. 계속해서 [Sacred Fire](1993), [Dance Of The Rainbow Serpent](1995) 등을 공개하며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산타나의 음악적 공로를 인정해 1998년에는 미국 LA의 선셋대로 땅바닥에 역사적인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새겨 넣는 소위 'Hollywood Walk Of Fame'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리고 1년후에 에릭 클랩튼, 로린 힐, 데이브 매튜스 등을 대거 초빙해 완성한 [Supernatural]로 산타나는 다시금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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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oth / Santana (Feat. Rob Tho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