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산다는 것은 기다림과 여행하는 것이다♡

어떤 개인날 본문

음악,영화/즐기자 韓國

어떤 개인날

dhgfykl; 2009. 7. 26. 00:13

 

이혼 1년 차 보영은 일상의 소소한 갈등도 참아내지 못할 만큼 지쳐 있다.

집을 나서는 골목길에선 택배 청년과 시비가 붙고, 마감을 훌쩍 넘긴 원고독촉도 그녀의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제 겨울이 지나면 마흔 살이 되는 보영은 자신의 곁에서 아이답지 않은

덤덤한 얼굴로 일상을 보내는 딸아이가 걱정스럽지만 되려 짜증만 더 낸다.

 전 남편은 한 통의 문자메시지로 재혼을 통보하고, 늘 위안이 되어 주었던 친구도 오랜만에 불러낸 옛 남자친구도

 보영에게 외로움만 확인시켜줄 뿐이다.

버둥댈수록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것 같은 무거운 나날들.

보영은 딸아이를 시각장애인인 아버지에게 맡기고 한 연수원에 특강을 하러 간다.

연수원 숙소에서 민요강사인 정남과 함께 방을 쓰게 된 보영.

 밀린 원고를 쓰려 애쓰는 보영에게 정남은 넉살 좋게 맥주를 권하며 말을 건다.

 똑같이 이혼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두 여자는 파티를 하듯 서로의 가슴 속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아직 이혼 후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음이 닫혀있는 보영에게 정남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고 한다. 정남의 충고에 보영은 화를 내고,

정남은 그런 보영이 ‘솔직하지 못하다’며 더 몰아세운다.

 다시 낯선 타인처럼 말없이 돌아누운 두 여자는 어두운 방안에서 서로의 흐느낌을 느낀다.

 

 

오리지널의 쾌감을 선사한 영화 '어떤 개인 날'

 


'처음' 참가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작품이 이숙경 감독의 영화 '어떤 개인 날'이었다.

별 기대없이 뽑아 든 카드였건만,  용케도 '블랙잭'이 떨어졌다.
 
영화의 시작은 '지리멸렬' 그 자체.

누군가의 엿보기처럼 조금은 어리숙한 카메라 워킹을 따라,

 이마에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한 여성이 등장한다.

택배기사와의 주차시비와 딸과의 기싸움이 연달아 이어질 때만해도 참을 만 했다.

곧이어, 출판사 사장과의 마찰이 이어지고, 카메라가 운전석 유리창에 붙은 주차위반 딱지에 이르는 순간,

 나는 참을 수 없는 갑갑함을 느껴야 했다. 출입구 없이 꽉 막힌 한증막에 갖힌 느낌이랄까,

오죽했으면, 여차하면 극장을 뛰쳐 나가려고 가방을 움켜 쥐었을까?      

만약, 영화 초반 10분이 어색한 영상문법을 통로로 주인공의 고단함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이하려는 '의도적 연출'이라면, 이숙경 감독은 상당히 노련한 솜씨를 갖춘 '꾼'일게다.

 주인공 '보영'의 짜증은, 이땅에서 '이혼녀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본능적 웅크리기'로 인해

얻어진 상처에서 비롯됐다. '보영'의 그늘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 순간부터 발현되어,

 모든 사회적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어 버린 듯 보인다.

영화 '어떤 개인 날'의 영문 제목은 'The day after'. 우연하게도,

냉전이 한창이던 1983년 핵폭발의 참상과 낙진으로 고통받는 인류의 모습을 그렸던

 영화 '그날 이후(The day after)'와 같은 제목이다.

영화가 그려내는 이혼녀 '보영'의 삶은, 낙진에 시달리며 피폐해져 가던 '그날 이후'의 그들과 닮았다.

의도했건 아니건, 영화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그녀들이,

 핵전쟁이후, 방사능에 오염된 '공기'와 싸우는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울버린의 가위손마저도 무력화 시킬 만한 질펀한 '사투리 신공'을 펼치는 그녀가 등장하기 전 까지는.


주인공 '보영'과 우연히 한 방을 쓰게 된 나이 어린 이혼 선배인 '정남'은 천상 '전라도 아짐'이다.

 자신의 상처와 욕망을 가감없이 '오리지널' 전라도 사투리로 토해내는 그녀 역시,

 '보영'처럼 한동안 짓눌린 삶을 살았단다. 아프지 않다고,

힘들지 않다고 폼 잡아봐야 소용이 없더란다. 그래서, 그녀는 남김없이 토해낸다.

 누구에게든 아프다고 외치고, 슬프다고 훌쩍인다.

 가식과 위선을 겹겹히 덧입은 '서울 다마내기'들과는 다른 삶이다.

그래서, 조금은 촌스럽고, 약간은 덜떨어져 보인다.

전라도 어느 장터에서든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아짐'들 처럼. 이숙경 감독은 전라도 아짐 '정남'을 통해, 드러내라고,

외치라고 권한다. 감추고 아닌 척 해봐야 몇 거플 벗겨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정남'을 연기한 배우 지정남은 전라도에서 '말바우 아짐'으로 통한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운전을 하고, 그녀의 공연을 보며 박장대소 했으며,

한 때는 그녀를 MC로 캐스팅해 TV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 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한참 동안이나 스크린 속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영화의 러닝타임중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30여 분 간, 주인공 '보영'의 가슴을 뒤흔들고,

 관객들의 꽉 막힌 가슴을 단번에 뚫어낸 그녀가

'말바우 아짐'이라는 사실을 관객과의 대화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가 스크린에서 전라도 곡성 장터 어딘가에서 막 올라온 '아짐'처럼 천연덕스럽게 뛰논 탓이다.

마치 마당극처럼 배우 지정남은 손짓 하나, 목소리 톤 하나로,

 어둠속에 파묻힌 관객을 스크린으로 감아 올리는 '신끼'를 발휘한다.

흔한 수식어인 '발견'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송강호의 등장이 '천둥'이었다면, 영화 '어떤 개인 날'의 지정남은 '번개'다.

 어쩌면 배우 지정남이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니 한국영화계 최고의 수확일 지도 모른다.

 나는 여지껏 지정남만큼 '오리지널'의 쾌감을 선사하는 여배우를 만난 적이 없으니까.

부디 많은 분들이 극장에서 내 주장의 진위를 확인해 주시길...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모든 여성에게 바침

 

 


백건영


한 여자가 빨래를 넌다.

 옥상 위로 펼쳐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하다.

탁탁 털어 가지런히 줄에 걸고는 하나씩 집게를 꽂는 여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바로 전 장면, 극중 처음으로 딸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는 같이 밥을 먹는 그녀,

그리고는 딸아이를 꼭 끌어안는 그녀는 지방강연을 마치고 막 집으로 돌아왔다.

거꾸로 재구성한 <어떤 개인 날>의 마지막 시퀀스다.

 

이숙경 감독의 <어떤 개인 날>은 이혼 1년차인 작가 ‘보영’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여성의 고립과 상처를 보듬어주는 영화다.

 감독은 보영이라는 여자의 며칠간의 행적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는 동안 싱글맘의 불안과

여성의 근원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속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는데,

철저하게 여성의 시각에서 그려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폐쇄적이지 않은 접근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 말하자면 고립의 연원을 찾아내되 굳이 상처를 치유하고자 무리수를 두지 않음으로써 열린 결말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여성영화들이 담으려 애썼던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은 곧잘

현실과의 괴리감을 매우지 못한 채 충돌을 일으키곤 했다.

여성영화가 소수영화의 범주에 머물러왔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인데,

그에 반해 여성운동가 출신이라는 이력이 무색할 정도로 <어떤 개인 날>이 보여주는

여성상은 한결 현실적이면서 인간적이다. 이를테면 보영은 구차스런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쿨 한 성격의 소유자처럼 보이지만 재혼을 앞둔 전 남편에 대한 감정의 찌꺼기는 여전히 남아 있고,

아이와 가정보다 사회활동에 더 열성적인 듯해도 실은 딸아이에 대한 애정이 차고 넘치며,

혼자서도 굳세게 살 것 같지만 사소한 일로도 친구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는 보편적인 여성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미덕은 오로지 자연인인 여성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에 있다.

이를 위해 감독은 인물들의 역할이 분산되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하고 있는데,

보영 뿐 아니라 그녀와 대구를 이루는 상대방의 목소리까지 귀에 쏙쏙 박히는 것은

 (가령 연수원 숙소 장면을 보면, 보영은 이미지로 정남은 사운드로 인물의 특징을 표현해낸다) 이 때문일 것이다.

강연을 맡아 지방의 연수원으로 간 보영은 같은 처지의 이혼녀 ‘정남’과 한 방을 쓰게 된다.

이때 두 여자가 밤을 가로지르며 술을 마시면서 속내를 털어놓는 긴긴 밤의 이야기는

 여성감독이 아니면 도저히 뽑아내지 못할 흥미로운 장면의 연속이다.

 그녀들의 속사정과 신변잡담 유의 수다가 뒤엉켜 난무하고 있음에도 보영과 정남이

주고받는대사는 리듬감을 동반하면서 자칫 지루해질 여지마저 차단시킨다.

 이처럼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을 같이 지낼 동료이자 같은 처지인 두 여성이 경계하듯

마음을 조금씩 내보이고 교감하다가 누구는 이내 심사가 뒤틀리고 또 다른 이는 흐느껴 울기까지,

감독은 김보영과 지정남이라는 뜻밖의 배우의 걸쭉하고 재기 넘치는 연기를 통해 무겁지 않게 끌어간다.

오랜만에 맛본 대사의 찰기. 그것은 신인답지 않은 과감성과 뚝심으로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연수원 시퀀스를 구성한 이숙경 감독의 공으로 돌려야 맞다.


 



 

보영은 그날 밤 이혼 후 처음으로 울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간파한 정남의 충고가 마치 상처에 뿌려진 소금처럼 느껴졌을 테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는 타인과 소통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전 남편을 만나도 오랜 친구를 만나도 하다못해 딸아이에게 조차도 그녀의 의사는

즉각적으로 상대에게 전달되는 법이 없었다. 아마도 오프닝에서처럼 거침없이 악다구니를 쓰는 이혼한

아줌마의 형상이야말로 최선의 방어책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감독은 전 남편이 떠난 벤치에 홀로 앉은 보영을 롱테이크로 잡은 화면과,

유리창에 비친 정남과 함께 보여 지는 보영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고립과 상처와 소통의 어려움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명쾌한 해답까지 내놓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점, 같은 처지라는 이유만으로 상처받은 여성이라는 유사성만으로

 동질감을 형성하고 느닷없이 속살거리며 연대하거나, 삶의 희망을 품고 쉼 없이 살아간다는 식의

억지스런 설정을 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떤 개인 날>은 의미를 성취한다.

 한마디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말하지 마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만 해도

이토록 여성의 상처를 잘 그려낼 수 있는 것을.

다시 마지막으로 돌아가면,

 긴 밤의 여로에서 돌아온 보영은 딸아이에게 “안전벨트”라고 속삭이며 행복해한다.

 영화 내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던 감독의 나지막한 전언에 다름 아닌

가장 빛나는 장면. 어쩌면 이제껏 그녀는 딸아이를 나의 안전벨트가 되어주는 존재로

인식하면서 스스로를 수동적 위치에 놓아버렸는지도, 또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아이 때문에 산다’는 식으로 숙명의 굴레에 갇힌 고달픈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 또한 아이의 안전벨트가 되겠다는 다짐인양 (마치 안전벨트를 채워주는 것처럼)

 뒤에서 아이를 감싸 안은 보영의 표정이 한 없이 평화롭다.

‘어떤 개인 날’처럼 화창할 그녀와 이 땅 모든 여성의 삶을 위하여!

 

 

 

 

 

 

 

 

 

 

 

Jean Lautce Orch - Par Un Beau Matin De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