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이른 봄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고양이들과 함께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무섭기도 했지만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나를 지탱해 주었고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그랬지 그랬었지대문 밖에서는늘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모진 세월 가고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사람들은 수월하게 행과 불행을 얘기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불행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행복하다 한다.
전자의 경우는 여자의 운명을 두고 한 말이겠고 후자의 경우는 名利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나 싶다."
"인류와 이 세상에 생을 받아 나온 모든 생영들의 삶의 부조리,
그것에 대응해 살아남는 모습, 존재의 본질적 추구를 같이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6.25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고 딸과 단둘이 살았고, 그 후
암선고를 받게 된다. 그때 그 심정을 소풍가는 기분이라고 무
거운 돌덩이를 지고 가는 기분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한다. 인
간의 존엄성은 자기 스스로가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 그녀, 마지
막에는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기위하여 항암치료를 거부했을
것이다. 내가 행복했다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것이라고 말한그녀,
마지막가는 길은 정말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가볍게 소풍가는 기
분으로 가시옵소서... 생의 끝에서 남긴작품이 시(詩)라는 것
이 참 인상적이다.
2008년 4월 '현대문학' 발표
박경리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긴 시편 <옛날의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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