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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제4회 MBC 대학가요제 은상/해야 - 마그마 본문

음악,영화/대학,강변가요제

1980년 제4회 MBC 대학가요제 은상/해야 - 마그마

dhgfykl; 2009. 1. 12. 21:10


 

 
 
 

 

 

 어둠속에 묻혀있는 고운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 어둠이 걷히고 햇볕이 번지면 깃을 치리라 마알간 해야 네가 웃음지면 홀로라도 나는 좋아라 어둠속에 묻혀있는 고운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 해야 떠라 해야 떠라 말갛게 해야 솟아라 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애띤 얼굴 솟아라 눈물 같은 골짜기에 서러운 달밤은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어라 해야 떠라 해야 떠라 말갛게 해야 솟아라 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애띤 얼굴 솟아라 눈물 같은 골짜기에 서러운 달밤은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어라 해야 떠라 해야 떠라 말갛게 해야 솟아라 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애띤 얼굴 솟아라 해야 떠라 해야 떠라 말갛게 해야 솟아라 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애띤 얼굴 솟아라 해야 떠라 해야 떠라 말갛게 해야 솟아라 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애띤 얼굴 솟아라 해야 떠라

 

'마그마'는 조하문 (Vocal/Bass), 문영식 (Drum), 김광현 (Guitar) 의 3 인조 그룹이다.

박두진의 시를 개사하여 조하문과 김광현이 곡을 만들었던 <해야>는 김광현의 비정통적인 기타 테크닉과

조하문의 독특한 보컬로 국내 락음악에 있어서 하드락/헤비메틀 사운드의 효시로 기록되고 있으며,

대학가요제 등장 당시에도 꽤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효과적인 이펙터의 사용 뿐만아니라

이전 대학가요제 음반에 비해 상당히 발전된 녹음기술로 3 인조의 구성에도 불구하고 꽉차있는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어,

15 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명곡으로 기록될 수 있다.

'마그마'는 이후 '81 년 한장의 독집 앨범을 끝으로 해산했으며,

조하문은 연극 음악 등을 해오다가 수년후 솔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예전같은 멋진 그룹 음악을 소화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마그마 Magma 1집 1981.10.10 힛트레코드
대학가요제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마그마의 유일한 음반이다.

고등학교시절 미국에서 밴드 활동을 했던 기타리스트 김광현의 현란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플레이와 "나이프 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조하문의 날카로운 보컬은

이전 대학가요제에서 볼 수 있었던 여타 스쿨밴드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A-3에서 보여주는 도발적인 보컬은 국내 Rock의 역사에 있어서 전대미문의 것이었고(

이 곡 때문에 외국의 록 메니아 들은 이들을 일본 밴드 Flower Travelling Band와 비교하기도 한다.)

B-2의 점진적인 몰입은 전성기 종주국의 Psychedelic Band들에 비견될 만 하다.

전문 엔지니어의 손을 거치지 않은 답답하고, 악기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녹음이 너무 아쉽게 느껴지는 한국 록의 명반이다.

 

 

 

 

-파격적 노래 ‘하드록의 전설’-
지금의 대학가요제와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의 대학가요제 수준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이제 거의 상식에 가깝다. 지금의 대학가요제가 대학생들의 뽐내기 잔치 혹은 학예회 수준이라면, 그 시절의(강변가요제, 해변가요제 등을 모두 포함한) 대학가요제는 말 그대로 새로운 뮤지션들의 등용문이나 같았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 벌어졌던, 대마초 파동과 금지곡으로 대표되는 가요정화운동은 내로라하는 기존의 가수들을 대부분 ‘은둔’하게 만들었고, 대학가요제에 등장했던 젊은 대학생들은 그 시기와 묘하게 맞물리며 선배들의 빈자리를 대신 할 수 있었다. 활주로, 블랙 테트라, 열기들, 김수철, 김학래 등은 그렇게 각 대학가요제들을 통해 처음 등장하였고 이후 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마그마 역시 이런 대학가요제, 그리고 8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밴드이다.
흔히들 마그마를 가리켜 한국 헤비메탈의 효시라는 평가를 내린다. 그만큼 당시 마그마처럼 하드한 록 음악을 구사하는 밴드는 드물었다. 아니, 이후 티삼스가 ‘매일매일 기다려’라는 노래로 87년 강변가요제에 나오기 전까지 이런 ‘센’ 음악을 하는 대학생 밴드는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무겁고 날카로운 하드 록·사이키델릭 사운드는 당시 많은 음악마니아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고, 이 앨범을 거의 ‘전설’의 수준으로 올려놔줬다(물론 이 전설의 배경에는 여간해선 구하기 어려웠던 앨범의 희소성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이들의 음악은 한마디로 그때까지 한국에선 들을 수 없던 음악이었다. 동시대의 캠퍼스 그룹사운드들은 록과 가요의 경계에 서있는 음악을 주로 구사하였고, 그외의 기성가수들은 포크 음악 또는 트로트 음악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그마는 기성세대에게 어쩌면 소음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해야’란 노래를 가지고 대학가요제 무대에 섰다. 그 무대에서 들려준 ‘해야’의 드라마틱한 구성과 조하문의 강렬한 샤우팅은 지금껏 유래가 없는 것이었다. 대학가요제 심사위원단은 이 파격적인 노래에 은상을 수여하였고, 마그마는 이듬해 여러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안은 채 정규 앨범을 발표하였다.
그렇게 발표된 정규 앨범은 ‘해야’를 듣고 품었던 많은 음악 마니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조하문은 한 곡을 제외하고 앨범 안의 모든 곡을 만들며 앨범의 방향을 주도했으며, 그의 강렬한 샤우팅 창법은 그를 한국 헤비메탈 보컬의 계보 맨 앞자락에 놓는다 해도 그리 의아하지 않을 수준의 것이었다.
또한 기타리스트 김광현은 적절하게 이펙터를 활용하며 하드 록·사이키델릭의 어법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조하문의 파격적인 샤우팅과 김광현의 강렬한 기타 연주까지 마그마의 모든 에너지가 결집돼 있는 ‘아름다운 곳’은 한국 헤비메탈의 효시라 평가하기에 충분한 곡이고, 심야 라디오 방송에서 꾸준히 리퀘스트되며 마그마의 전설에 큰 역할을 한 ‘잊혀진 사랑’은 한국 록의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다.
또한 제목 옆에 붙어있는 ‘경음악’이라는 표기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종일관 무겁고 날카롭게 펼쳐지는 연주곡 ‘탈출’에서 김광현의 사이키델릭한 연주는 김수철의 ‘어둠의 세계’에 필적할 만한 명연이었다.
마그마는 이 한장의 앨범 이후 해체하였고 다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조하문은 ‘이 밤을 다시 한번’과 ‘눈 오는 밤’을 부르며 솔로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조하문은 목회자가 되어 있다. 지금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데 인생의 가장 큰 가치와 의미를 두고 살아가고 있겠지만, 그가 청년 시절에 들려줬던 이 놀라운 음악 역시 한국대중음악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록의 복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