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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 대학생 대상 가요제의 전성시대 본문

음악,영화/대학,강변가요제

1970년대 말 대학생 대상 가요제의 전성시대

dhgfykl; 2009. 1. 2. 21:08


 

 
 

1970년대 말 대학생 대상 가요제의 전성시대

 

기왕 대학가요제 얘기가 나왔으니 내친 김에 좀더 가보자.
1977년 가을 문화방송 주최 ‘제1회 대학가요제’와 이듬해 동양방송 주최 ‘해변가요제’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선풍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이미 다룬 바 있다.
‘제2회 대학가요제’ 역시 ‘탈춤’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돌고 돌아가는 길’
‘그때 그 사람’(!) 등의 인기곡을 배출했다는 얘기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복습 겸해서 기억해둘 사항은 ‘1980년대 예비 스타’들이
1978년에 이들 가요제를 통해 대거 배출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제1회 대학가요제’를 보고 ‘대학가의 숨은 고수들’이
하나같이 칼을 벼리었던 까닭이라는 게 다수설이다.
어쨌든, 송골매의 쌍두마차로 활약하게 될 배철수(활주로)와 구창모(블랙 테트라),
당대의 ‘꽃미남’ 가수 이명훈(휘버스), ‘김성호의 회상’의 바로 그 김성호(블루 드래곤)를 비롯해 심수봉,
노사연, 이치현(벗님들) 그리고 이후 가수보다는 진행자로 맹활약한 임백천, 주
병진, 왕영은(징검다리) 등이 그해에 배출되었다.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나중에 그룹 들국화에서 ‘세계로 가는 기차’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등의 수작을 남긴 조덕환도 고려대 그룹 사운드 고인돌의 멤버로 출전한 바 있다.
 
 
이때를 기점으로 이른바 캠퍼스 음악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대학생 대상 가요제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더 많아진 입상곡들은 더 큰 인기를 모았다.
‘해변가요제’에서 이름이 바뀐 ‘젊은이의 가요제’는 라이너스의 ‘연’,
로커스트의 ‘하늘색 꿈’, 옥슨의 ‘불놀이야’ 등을 히트시키며 ‘MBC 대학가요제’의 라이벌로 자리를 굳혔다.
문화방송은 FM 라디오 주최 가요제(‘강변축제’)를 하나 더 개최해 홍삼트리오의 ‘기도’를 인기 차트에 올리며 맞대응했다.
지방 방송국도 가요제 개최 대열에 합류했는데, 광주에서 열린 ‘전일방송 대학가요제’는
김만준의 ‘모모’를 정상에 올리는 수확을 거두었다.
 
 
이처럼 ‘장사’가 잘 되었기 때문에 대학생 가요제의 음반 판권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MBC 대학가요제’의 경우 처음에는 판권비가 50만원씩이었는데 음반이
대박을 터뜨리자 3회부터는 500만원으로 폭등했고, 200만원이었던 ‘해변가요제’의 판권료는
이듬해 ‘젊은이의 가요제’ 때 630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일간스포츠’ 1980. 6. 4.) <젊은이를 위한 음악 시리즈>라든가 <대학 그룹 옴니버스> 같은
편집음반 발매가 뒤를 이었음은 물론이다.
 
 
대학생 가요제 출신 아마추어 가수 및 밴드들은 아이돌 스타이자 청춘 스타로서
가요계를 넘어 방송연예계 전반에 걸쳐 샛별로 떠올랐다.
대학생 중심 방송 프로그램이 신설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현상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1980년대 초 한국방송의 ‘젊음의 행진’과 문화방송의 ‘영 11’이 대표적인데,
그 이름만으로 ‘추억은 방울방울’ 맺히는 중장년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1979년 이후 ‘MBC 대학가요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1979년에는 김학래 임철우의 ‘내가’ 정권수 박미희의 ‘영랑과 강진’
1980년에는 이범용 한명훈의 ‘꿈의 대화’ 마그마의 ‘해야’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
1981년에는 정오차의 ‘바윗돌’ 1982년엔 조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
등의 히트곡을 계속 분만했다.
대학생에 대한 10대들의 동경과 대학가요제 입상을 목표로 수험생활을 견뎌낸
대학생들의 참가 열기는 여전히 상종가 행진을 벌였지만,
진부하다거나 풋풋함이 실종되고 있다는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점차 세를 더해갔던 것도 사실이다.
회가 거듭될수록 대학생 가요제 자체의 신선함이나 상업적 약발이 떨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굳이 그 전환점을 잡아보자면, 아마추어 록 밴드 티가 폴폴 나던 선배들과 달리
짱짱한 연주력을 자랑한 마그마와 캠퍼스 그룹 일반의 무드와는 상이한 연주를 들려준
샤프가 입상한 1980년 즈음으로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1980년이라…. 정치·사회적 환경이나 대학가의 분위기가 대학가요제를 더 이상

‘축제’로만 대할 수 없게 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해 말이다.

 

이용우 (대중음악평론가)

 

 

 
백학 -Chechen의 비애가 담긴 노래

이 노래는 감자또프(Р. Гамзатов)라는 다게스탄 시인의 음유시에
러시아의 작곡자 프리엔껠(Я. Френкель)이 곡을 붙인것입니다.

러시아와 적대관계로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는 체첸(Chechnya) 전사(戰士)들의
영광된 죽음을 찬미하는 내용으로 우리에게는 SBS의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곡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죠.

체첸인에 대해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 지기트(Jigit)는
카프카스(Caucasus) 지역의 전사(戰士)를 일컫는 말로
서구의 기사나 일본의 무사의 개념과 유사합니다.

다른 점이라면 고정된 신분이 아니라 용맹과 의리, 그리고 도덕성을 보인
카프카스인이면누구나 지기트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체첸인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명예로운 칭호라고합니다.

산악 유목민족이었던 체첸족은 험난한 자연과의 투쟁,
그리고 주변 이민족과의 전쟁을 거치며 생존해 왔으며,
따라서 무(武)를 숭상할 수밖에 없었을거라고 여겨집니다.